[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上>대통령 핵심공약 줄줄이 파기
교육부 관계자는 “누리과정 등 예산 문제가 적체되어 있어 기존 공약대로 초등돌봄교실 무상지원 대상을 내년 3, 4학년으로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내년에는 올해 시작한 1, 2학년 대상 무상 초등돌봄교실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9일 밝혔다.
무상 초등돌봄교실은 저소득층과 맞벌이가정 자녀들을 방과 후에 무상으로 보살펴주는 제도. 올해 초등학교 1, 2학년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내년에는 3, 4학년까지 대상 범위를 넓히고, 2016년에는 전체 초등학생으로 확대한다는 게 공약 내용이다.
내년 3, 4학년 신청자 전원으로 무상지원 대상이 확대될 경우 초등돌봄교실 수요자는 올해 22만1310명에서 29만여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당초 교육부는 내년 초등돌봄교실 예산으로 △인건비 1991억 원 △프로그램비 1032억 원 △시설비 609억 원 △기타 2968억 원 등 총 6600억 원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0원으로 편성되자, 교육부는 시도교육청 예산이 부족한 상황을 감안해 공약 이행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예산(551억 원)보다 줄어든 399억 원을 편성할 예정이다. 시설 확충비를 제외하고 인건비 등 최소한의 운영비만 책정한 금액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마른 수건을 짜야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교육부로부터 올해 3, 4학년 확대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다행”이라며 “내년 초등돌봄교실은 올해와 비슷하게 현상 유지를 하자는 의미에서 예산을 최소한으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무상 초등돌봄교실이 대선 핵심 공약임에도 국고 지원이 0원으로 편성된 것은 정부가 이 정책을 누리과정과 같이 교육청 사업이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시도교육청은 “돌봄 전용교실을 증축하기에도 예산이 빠듯해 돌봄전담사 월급을 제대로 주기 힘들 정도로 재정이 어렵다”며 “대통령 공약 사업은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말 국회에서 1000억 원의 긴급 국고 지원이 있어 첫 시행이 가능했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내년 무상 초등돌봄교실이 3, 4학년까지 확대되지 못하면, 이어 2016년 1∼6학년 신청자 전원 무상 공약을 이행하는 것도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무상 초등돌봄교실이 처음 시작된 올해부터 이 공약은 ‘준비되지 않은 졸속 공약’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1, 2학년이 무상으로 바뀌면서 신청자 수가 지난해 15만9737명에서 22만1310명으로 38.5%(6만1573명) 급증했지만 돌봄교실과 돌봄전담사를 확충하기에는 재정이 빠듯했던 탓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돌봄교실에서는 독서논술, 클레이아트, 바둑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러나 올해엔 인원이 늘어나고 무상으로 바뀌면서 외부강사 선임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대다수 학교는 양질의 교육보다는 종이 접기, 동영상 시청 등 단순히 아이들과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돌봄 전용교실을 증축하지 못해 수업용 교실을 임시로 사용한 학교도 많다. 돌봄 전용교실은 TV, 소파, 냉장고, 싱크대, 조리기기 등이 설치돼 있고 온돌 마룻바닥이어야 한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방과 후에는 교실 책걸상을 치우고 ‘돌봄 겸용교실’ 문패를 달고 운영한 뒤 돌봄교실이 끝나는 오후 10시가 되면 책걸상을 제자리로 갖다놓는 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봄전담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학교에서는 안전사고도 잇따랐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1학기에만 책상 등 집기에 부딪히거나 학습 도구에 의한 부상이 59건, 넘어짐 44건 등 160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내년에도 초등돌봄교실 예산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자 전국 초등돌봄전담사들은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대전에서 돌봄전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조범례 씨는 “재정 지원 없는 무리한 돌봄교실 확대가 부실 운영을 낳았다”며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줄어든다면 상황은 올해보다 나아질 게 없다.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콩나물시루 같은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이 방과 후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