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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세 번 살해당한 요코타 메구미

입력 | 2014-11-10 03:00:00

요코타 메구미 씨 ‘사망’에 관한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 애써 외면하는 일본 정부와 언론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생환을 원한다면 정보 앞세워 북한을 압박해야




심규선 대기자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전체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존재다. 납북자 문제만큼은 일본 정계도 당과 정파를 뛰어넘어 철저하게 공조하고 있다. 그 맨 앞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있다. 아베 총리의 꿈이 메구미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북한에서 일본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메구미에 대해 지난주 동아일보가 의미 있는 보도를 했다. 그가 서른 살이던 1994년 4월 평양의 한 격리병동에서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며 독극물 또는 약물과다 투여로 사망했다는 목격자 증언을 전한 것이다. 이 증언은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 정부의 공식기구인 납치문제대책본부가 올 9월에 목격자 2명을 직접 조사해서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보도를 접한 일본 정부와 언론의 태도가 묘하다.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고, 총리는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납치문제담당상은 “코멘트를 삼가고 싶다”고 했다. 도대체 목격자를 조사한 일조차 없다는 것인지, 증언은 확보했지만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조차 헷갈린다.

일본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사 판단이야 언론사의 몫이라고 하지만 동아일보의 보도를 전하는 신문들조차 1단 취급이 많았다. 평소 납북자 보도 태도와 비교해 예상 밖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중 하나라서 그렇다곤 하지만, 만약 메구미가 살아 있다는 증언이 이번처럼 자세히 드러난다고 해도 그렇게 신중하게 반응할지 의문이다.

산케이신문은 역시 산케이신문답게 다뤘다. “일본 정부는 ‘보도는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정부 관계자)면서 보도기관을 이용한 프로파간다(선전) 공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 대책본부의 관계자는 ‘북한이나 납치 문제 해결에 반대하는 세력이 불만을 갖고 앞으로도 사망 정보를 유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기사를 공작적 차원에서 이렇게까지 해석할 수 있는 취재력과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신빙성의 평가는 일본의 몫이라고 치자. 납치문제대책본부의 조사는 어떤가. 조사서에는 질의응답의 전문(全文)과 일본 담당공무원 3명의 명함이 붙어 있다. 이는 명백한 팩트(사실)다. 그렇다면 기자는 당연히 물어야 한다. 조사를 한 것은 사실 아닌가, 조사 결과는 어느 선까지 알고 있는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목격자의 존재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그러나 일본의 어느 신문에도 이에 대한 답이 없다.

동아일보의 보도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어디서 얻은 정보든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야 하는 게 매스컴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서류 증거만이 증거라던 일본 정부는 어디로 갔으며,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기소에 한국에 언론 자유가 있느냐고 비판하던 일본 언론은 왜 당연한 질문을 하지 않는지 되묻고 싶다.

메구미는 이미 세 번이나 살해당했다. 1977년 열세 살의 나이로 납치될 때 이미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어린 나이에, 부모와 고향과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북한에서의 삶을 과연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1994년에도 살해당한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가 산후 우울증으로 1994년에 자살했다고 했다. 김 국방위원장의 발언과 동아일보 보도에는 정황이 일치하는 대목이 많다. 백번 양보해 그가 자살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찌 자살이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까. 체제에 의한 타살임이 분명하다.

그는 2004년에 다시 한 번 살해당한다. 북한이 일본에 보낸 그의 유골은 가짜로 확인됐다. 한 기구한 여인의 삶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부도덕한 집단에 의해 그의 존엄은 다시 한 번 살해당했다.

그리고 이번 동아일보의 보도다. 일본 정부는 모든 납북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북한과 협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납북자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묵살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희망이 한때 사실을 덮을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메구미의 생환을 기원한다. 북-일 협상에 지장을 줄까 봐, 정권에 타격을 입힐까 봐 중요한 정보를 왜곡한다면 스스로 무기를 버리는 일이다. 그가 만약 살아 있다면 어떤 정보든 북한을 압박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의 생환은 멀어지고, 그를 네 번째로 버리는 일이 될 지 걱정이다. 북한은 그런 나라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