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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1시간45분前 극적 합의

입력 | 2014-11-11 03:00:00

[한중 FTA 타결]한국경제 영향은
30개월만에 타결… 협상 막전막후




“6일 밤까지 완전 타결을 못했다. 8일 밤 협상단의 철수도 고려했다.”

김영무 산업통상자원부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단장(한중 FTA 협상대표단 교체수석대표)은 10일 한중 FTA 협상의 타결 과정을 전하며 잠시 목이 멨다. 그만큼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었다는 얘기다.

○ 이틀 전까지도 협상 결렬 위기

이달 4일 시작된 한중 FTA 14차 협상은 한중 모두 살얼음판을 걷듯 힘겨웠다. 10일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지어야 했다. 하지만 양국의 개방 수준과 쌀을 협정에서 제외하는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협상장에서는 일주일 가까이 고성이 오갔다.

한국 대표단이 마지노선으로 정한 6일까지 협상은 겉돌았다. 결국 한국 협상대표단은 8일 밤 철수를 고려하기도 했다. 한중 정상회담까지 협상 타결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김 단장은 “대표단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해 큰 쟁점을 털어보려 했지만 너무 많은 쟁점이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9일 재개한 협상을 10일 오전 2시까지 이어가며 양국 대표단은 쟁점을 좁혀갔다. 결국 10일 오전 7시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마주 앉았다. 한중 정상회담을 2시간 45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양국 장관은 최종 쟁점을 점검한 뒤 1시간여 만에 실질적 타결에 합의했다.

○ ‘라오펑유’ 두 정상의 ‘막후 조정’

한중 FTA는 여러 차례 고비를 맞았다. 그때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섰다. 1단계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해 6월 양국 정상은 취임 이후 처음 정상회담을 열어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 담음으로써 FTA 협상은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부 품목을 두고 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협상은 또다시 지지부진했다. 이때 다시 양국 정상이 나섰다. 올해 7월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은 새로운 전기가 됐다. 당시 양국 정상은 ‘한중 FTA의 연내 타결을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최종 타결 시한을 못 박음으로써 협상의 속도를 높이도록 독려한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10일은 양국 협상단이 더이상 늦출 수 없는 ‘데드라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양국 정상이 한중 FTA의 막후 협상을 이끌어온 셈이다.

○ 5번째 만난 한중 정상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2년 만에 가장 중요한 협정을 맺은 데는 박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돈독한 관계가 큰 역할을 했다.

두 정상이 처음 만난 것은 9년 전인 2005년 7월. 당시 저장(浙江) 성 당서기였던 시 주석은 한국을 방문해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인 박 대통령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지방 일정을 취소하고 시 주석을 만나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이후 두 정상은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가 됐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이 가장 자주, 가장 많이 만난 외국 정상이다.

베이징=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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