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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곳간 빈 지자체… 길 못내고 방역예산 깎아 복지비 메워

입력 | 2014-11-11 03:00:00

[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中>대안없는 복지에 지방살림 거덜




전국 최대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가 있는 충북 음성군의 복지비용은 단일 시군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올해 꽃동네 운영비 256억 원 가운데 78억 원을 부담해야 했다. 2011년부터 무상급식으로 복지예산이 더욱 늘어나자 음성군은 꽃동네 지원을 정부가 맡아 달라고 요구했다. 꽃동네 입소자의 80%가 충북도민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노인 아동 생활시설은 지방에 이양된 사업이라며 음성군의 요구를 일축했다. 무상복지로 지방과 중앙정부의 곳간이 비면서 사회복지시설 지원금을 둘러싼 줄다리기도 더 팽팽해지고 있다.

무상복지는 물론이고 중앙정부가 지시하는 정책에도 일정 비율로 예산을 투입하느라 일선 시군에선 정작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무상교육이 오히려 지방교육청의 재정을 위협해 교육의 본질인 교실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아예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 ‘빚 늘고 현안 밀리고…’ 지자체 초비상

강원도는 2018년 겨울올림픽 경기장 건설과 진입도로 공사 등 돈 쓸 곳이 많은데 각종 복지예산이 늘어나 비상이다. 이에 따라 올림픽 시설(780억 원)과 도로 건설비용(200억 원)은 지방채 발행을 통해 충당할 방침이다. 그러면 강원도 지방채는 올해 말 5800억 원에서 내년 말 6330억 원으로 늘어난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각종 사업을 빚을 내서 해야 할 형편이라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상당수 사업도 규모를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대구 동구 불로동의 20년 넘게 뚫리지 않는 소방도로는 주민들의 해묵은 민원이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동구의 장기 미집행 도로는 608건, 면적은 183만8500m²에 이른다. 동구 관계자는 “전체 예산 4070여억 원 가운데 기초연금과 영·유아 보육료, 가정양육수당,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복지비가 2500여억 원(62%)을 차지한다. 인건비를 빼면 가용 예산이 전무하다시피 해 해마다 주민 민원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남구 관계자는 “무상복지 예산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주민 숙원 및 우선 사업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다. 올해는 주민 위생을 위한 방역예산 1000여만 원까지 줄였다”고 말했다.

수많은 복지 사업이 쏟아지다 보니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해 줄줄 새는 현상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한 복지 관련 유선방송사 제주지사 대표 권모 씨(44)는 3월 ‘제1회 제주장애인청소년을 위한 청소년복지음악캠프’를 열어 제주도에서 받은 보조금 1억 원을 개인 용도로 써버렸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보조금이 빼돌려져 흥청망청 쓰이는 사실을 공무원들은 까마득히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 무상복지는 ‘교육 본말전도 복지’

광주시교육청은 예산 부족으로 초등학생 학생준비물 지원비를 학생 1인당 올해 4만2000원에서 내년 3만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수학여행 지원비도 초등학교는 10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중학교는 15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내년부터 축소한다. 과학체험교실 등 10여 개 사업은 예산 편성조차 하지 못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의 본질은 학습과 수업인데 무상복지로 이런 본질이 침해당했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니고 뭐냐”고 말했다.

전북도교육청도 내년 무상보육 예산이 823억 원으로 올해보다 213억 원 늘어나면서 자체사업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도교육청 정옥희 대변인은 “교육예산 총액은 일괄 삭감됐는데 인건비와 누리과정 예산은 늘기 때문에 혁신학교 어울림학교 통학버스지원 농어촌학교살리기 등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각종 사업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6일 대전시교육청에 무상급식 재원 분담비율을 다른 시도교육청처럼 50%로 높여줄 것을 제안했다. 대전은 무상급식 분담비율이 시 60%, 5개 구 20%, 시교육청 20%이기 때문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시의 무상급식 지원 예산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힐링캠프나 대학생 멘토링 등 호응을 얻고 있는 청소년 선도 사업도 확대하기 어렵고 새로운 교육 사업은 구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실현 가능 복지’로 재편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조세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입 규모는 그대로인데 국고보조사업이 늘어나 재정난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하능식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지방채 발행 등으로 급한 불을 끄고 중장기적으로 지방세와 지방교부세율 등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자주 재원의 비중을 높여 재정 분권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8 대 2의 국세와 지방세 비율도 지자체의 세출이 크게 늘어나는 현실에 맞지 않는 만큼 지방세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복지정책을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방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복지정책을 시행했으니 예견된 ‘복지대란’ 아니냐는 것이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재정학회장)는 “무상보육 등 복지정책의 도입 단계부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어떻게 예산을 분담할 것인지 합의가 선행됐어야 한다”며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의 부담률을 낮추고 우선순위가 낮은 국고보조 사업들을 폐지하면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mhjee@donga.com / 청주=장기우 / 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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