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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재정 빨간불인데… 年 2조 고교무상교육 등 줄줄이 대기

입력 | 2014-11-11 03:00:00

[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中>이제 시작인 무상복지 후폭풍




“균형감을 잃은 복지정책은 표만 의식한 무책임한 논의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포크배럴(pork barrel·가축먹이통)’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겠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1년 9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당시 정치권에 불어닥친 ‘복지 포퓰리즘’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국회의원들을 농장주가 가축먹이통에 고기 한 조각 던져줄 때 모여드는 노예에 비유하며 무상복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여야 합의로 무상보육 대상이 만 5세에서 만 3, 4세로 확대되면서 무상복지를 요구했던 정치권과 재정건전성 강화를 주장한 정부 사이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복지 재원 갈등이 앞으로 닥칠 무상복지 후폭풍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수조 원의 재정이 필요한 복지정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데다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새로운 복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 고교 무상교육 재원싸고 갈등 가능성 높아


고교 무상교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으로 당초 올해부터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재원 부족으로 연기됐다. 교육부는 2000여억 원의 예산으로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기재부는 내년 예산에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도입하려면 연간 2조2000억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누리과정을 위해 시도교육청이 내년 어린이집에 지원해야 할 보육료 총액(2조1429억 원)보다 많은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재원 부족으로 연기된 이들 복지 정책을 박 대통령 임기 중 시행할 방침이다. 특히 고교 무상교육은 시도교육청들이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돼 있는 만큼 도입 과정에서 누리과정 못지않은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

올해 시도교육감 선거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복지정책을 현실화하려는 움직임도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선거에서 당선된 시도교육감들은 수학여행비와 체험학습비, 교과서 지원 등 수백억 원씩 예산이 들어가는 무상복지 정책들을 내놨다. 지역의회 등에서는 이 교육감들이 약속한 복지공약을 달성하는 데 지역별로 500억∼1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도 잇따라 새로운 복지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안은 실업급여 지급일수를 현재 최장 240일에서 360일로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렇게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 매년 2조 원 이상의 재정이 더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엄격한 ‘재정규율’ 도입해야”

무상복지 정책들의 봇물이 터지면서 재정악화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재부가 내년도에 편성한 복지예산은 115조5000억 원으로 2011년 86조 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34.3% 늘어났다.

늘어난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은 무상복지 정책들이 쏟아진 보육, 노인복지에 집중됐다. 실제로 보육·가족·여성 분야에 대한 복지예산은 2005년 6786억 원에서 올해 5조3105억 원으로 8배 수준으로 늘었으며 노인·청소년 예산은 같은 기간 4797억 원에서 6조5198억 원으로 13.5배 규모가 됐다. 반면 대표적인 저소득층 복지인 기초생활수급 관련 예산은 같은 기간 1.9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문제는 세금만으론 무상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세수가 당초 목표치보다 10조 원가량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 2조8000억 원, 지난해 8조5000억 원에 이어 세수 구멍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재정수지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43조2000억 원) 이후 6년 만에 최대인 33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무상복지 확대로 인한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나 국가채무 한도를 법으로 규제하는 엄격한 ‘재정규율’ 도입을 통해 복지정책이 마구잡이로 편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재정위원회’ 등 독립기구를 세워 복지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추산하고, 해당 복지정책을 추진한 정치권이나 정부에 증세 등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무상복지 확대는 복지개혁에 나선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증세 등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재정파탄을 앞당기는 만큼 엄격한 재정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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