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 <1> 벼랑끝서 웃음 찾은 유 모씨
《 생활고로 세상을 등진 서울 송파구 세 모녀처럼 복지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웃이 적지 않다. 기초생활보장급여는 최소한의 복지제도일 뿐 실직이나 질병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삶의 위기에는 정부 지원이 일일이 미치지 못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많은 독지가의 성원을 모아 이런 이웃을 돕는 ‘위기가정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두 기관과 함께 위기에 놓인 이웃을 지원하기 위해 5회에 걸쳐 ‘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이라는 공동 기획을 연재한다. 》
“엄마, 로또 당첨되면 군대 안 가도 되나요?”
6일 서울 송파구 마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유 모씨(55·서울 송파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사관으로 군대에 가게 될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전하다가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유 씨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해 자원입대했다. 아들이 내색은 안 하지만 대학 대신 군대를 택한 것이 못내 아쉬운 것 같다”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유 씨는 평생 일을 쉰 적이 없다. 그런데도 빚은 쌓여만 가고 가난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 몸이 좋지 않지만 지금도 청소를 하러 다닌다. 하루 일하고 나면 하루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월수입은 본인이 버는 120만 원, 대학을 휴학 중인 딸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 원이 전부다.
○ 연이은 장사 실패로 재기 어려워져
갑자기 살림이 기운 건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남편이 일자리를 잃자 과수원을 빌려 과일 농사를 시작했다. 서울 토박이에게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태풍을 두 번 겪고 나서 다시 서울로 왔다. 보증금은 모두 날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친구가 소개해 준 건물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시골 어머니에게 맡기고 부부는 재기의 꿈을 키웠다. 건물 지하에서 먹고 자며 일했고, 남편이 막노동으로 벌어온 돈은 모두 주방 아줌마의 월급으로 나갔다. 하루에 한두 그릇 팔리던 식당이 자리를 잡았을 무렵 건물이 팔렸고 내쫓겼다. 빚이 늘어나 남편과 싸움이 잦아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2년 전 마지막 장사라 생각하고 호프집을 열었다.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보증금 20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이혼에 이르렀고 파산 선고를 받았다.
“내일은 잠에서 아예 깨지 않았으면 하고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았네’ 하며 통곡했어요.”
○ 위기가정 살리는 긴급 구호
유 씨가 희망을 다시 찾은 건 5월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위기가정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이후다. 밀린 월세 5개월 치 225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원받아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서 벗어났다.
“어떤 사람한테는 푼돈일 수 있지만 마치 이 세상에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아 정말 감사했어요. 살아갈 용기가 생겨나더라고요.”
유 씨의 사연은 송파구 세 모녀 사연과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고를 벗어나기 어려웠고, 갑작스럽게 질병이 찾아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꼬박꼬박 이자를 갚고 공과금을 낼 만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음에도 정작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와주는 곳은 없었다. 자산 기준이 엄격한 데다 부양의무자가 있어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 이수현 마천종합사회복지관 팀장은 “유 씨처럼 긴급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정부 제도만으로는 지원이 어렵다. 앞으로 금융 컨설팅과 함께 의료비 지원도 연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