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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보편 vs 선별 논쟁 그만 ‘한국형 복지’ 길 찾아라

입력 | 2014-11-12 03:00:00

[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下>‘대한민국 복지 어디로’ 전문가 30명에게 물어보니




《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둘러싼 복지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용 부담을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서로 떠넘기는 상황 속에서 복지 수준을 축소해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서는 한국의 복지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1.7%)의 절반에 못 미치기 때문에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런 대립은 복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팽팽하다. 하지만 ‘보편 vs 선별’ 복지 논쟁이 오히려 한국의 복지 사회를 향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가 복지 전문가 30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30명 중 28명은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 하는 정치이념 논쟁의 프레임을 깨야 미래 한국 복지를 향한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왜일까. 》

○ 보편 vs 선별 논쟁 프레임을 깨자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이미 분야별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혼재돼 있다. 이는 유럽의 복지 선진국도 비슷한 실정이다. 보육, 건강보험 등은 보편적 복지인 반면 기초생활보장제는 선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학)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미 보편과 선별이 타협 지점을 찾아 현재의 복지 시스템이 갖춰졌다”면서 “정치권이 이를 무시하고 다시 논쟁을 펴는 것은 국력 낭비다”라고 지적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거대담론 위주의 논쟁이 또 다른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보육과 급식에 논쟁이 집중되면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차상위계층, 아동 청소년에 대한 복지가 취약한 상황이다.

윤희숙 한국경제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치권이 복지를 통으로 늘리자 줄이자 논쟁을 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며 “복지의 우선순위를 다시 고민하고 분야별로 세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보육 0∼2세와 3∼5세 다른 접근이 필요

비용 갈등이 가장 심한 무상보육의 경우 0∼2세와 3∼5세를 구분해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아동학계에 따르면 0∼2세는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다. 맞벌이 부부, 한부모가정 등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전폭적인 보육 지원이 필요하지만, 전업주부들에겐 가정보육을 장려해야 한다. 국내 여성취업률이 약 50%에 불과한데, 모든 계층에 종일보육을 보장하는 것이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성은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스웨덴도 0∼1세의 경우 보육시설 이용률이 10% 미만이다”라며 “소득 상위그룹의 전업주부에게까지 보육 지원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5세 누리과정의 경우 초등학교처럼 전 계층에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지원 시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3∼5세 교육과정을 도입한 유럽 국가들도 4∼5시간만 지원하는데, 한국은 사실상 8시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은 지자체의 재정 상황에 맞게 대상자 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급식은 그리 급한 것이 아니다. 대상자를 50% 수준으로 줄였다가 장기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상자를 줄이더라도 제대로 된 급식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경기도는 무상급식용 음식물 쓰레기 처리량이 2010년 4만9138t에서 지난해 7만6164t으로 1.5배 늘어났다. 같은 기간 무상급식 참여 학교가 1.1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버려지는 음식물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야기다.

○ 아동청소년, 차상위 지원 확대 절실


복지를 확대할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대표적인 분야가 영유아(0∼5세) 지원에 밀려 복지에서 소외됐던 아동 및 청소년(6∼18세)이다.

OECD 국가들은 GDP 대비 평균 아동복지지출을 1990년 1.6%에서 2009년 2.3%까지 늘렸다. 하지만 한국은 0.8%에 불과하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아동 청소년 복지가 노인 장애인 등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라며 “정치권이 부모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영유아 복지에 비해 아동 청소년 복지에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복지가 가장 절실한 계층인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는 전체 인구의 3%밖에 지원하지 않는데, 선진국(6%)의 절반 수준이다”라며 “복지가 가장 필요한 계층이 어디인지 우선순위를 두고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감세 철회해 기업들도 고통 분담을”… “사회 전체가 증세 필요성 공감해야” ▼

전문가 “증세 불가피”… 대상엔 이견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증세를 논의하자”고 언급하면서 눈치만 보던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증세 논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복지 전문가들은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는 명제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증세의 대상과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기업 감세만 철회해도 증세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종만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명박 정부에서 다양한 기업 감세 조치를 했지만 과연 투자, 고용이 얼마나 늘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늘지 않았느냐”며 “증세를 할 때는 기업도 일반 국민과 함께 고통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어느 한 계층이 세금 부담을 떠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복지를 하려면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 전체가 체감해야 장기적으로 복지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즉각적인 증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학)는 “지방에 가보면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도 너무 잘 포장돼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과잉 투자, 군납 비리 등 세출 구조 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다”라며 “내가 낸 세금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증세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 명단>

강혜규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복지서비스연구실장, 구인회 서울대 교수, 김미숙 보사연 연구위원, 김양균 경희대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김원식 건국대 교수, 김윤태 고려대 교수, 김종숙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 김진수 연세대 교수, 김형용 동국대 교수,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노대명 보사연 연구위원, 박능후 경기대 교수, 백종만 전북대 교수,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석재은 한림대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윤희숙 KDI 연구위원, 윤홍식 인하대 교수, 이금룡 상명대 교수, 이봉주 서울대 교수, 이성호 중앙대 교수,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연구실장,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조흥식 서울대 교수,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최성은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최창렬 용인대 교수, 홍성걸 국민대 교수, 황명진 고려대 교수

유근형 noel@donga.com·전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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