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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유럽도 깎고 늦추고… 복지수술 골든타임

입력 | 2014-11-12 03:00:00

[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下>복지 선진국들의 시행착오 속에 복지갈등 해법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많은 국가가 ‘복지국가’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복지를 둘러싼 갈등은 새로운 도전처럼 다가오지만 이미 복지선진국들은 복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때론 나라 창고의 빗장을 풀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대안을 시도해왔다. 현재 미로를 헤매고 있는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해답을 이들 나라에서 찾아보고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상보육에 중앙-지방 재정 구분 명확해야

외국은 무상보육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이 엄격히 구분돼 있다. 프랑스는 3∼6세 아동의 유치원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되 교육부가 65%, 지방정부가 35%를 부담한다. 스웨덴 역시 4∼5세 모든 아동에게 하루 3시간씩 무상보육을 지원하는데 이 비용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나눠 부담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을 명확히 구분해 서로 지출을 떠넘기려는 갈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보육 서비스와 관련해 눈여겨볼 한 가지는 ‘자격조건 강화’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육아수당 지급에 차별을 두거나 유치원 등 보육 서비스 이용 비용에 차등을 둔다. 영국은 원래는 16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모든 가정에 육아수당을 지급해왔지만 지난해부터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연봉 4만4000파운드가 넘으면 지급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스위스는 맞벌이 부부가 탁아소를 이용할 때 소득 수준이 낮을 경우에만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도록 한다.

○ 자활지원 비중 늘려야

지속 가능한 복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만 받는 일방적 수급자 신분을 뛰어넘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의 복지지출 중 자립 지원 분야에 대한 지출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도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출 규모는 약 4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은 1996년 복지개혁을 통해 복지 혜택을 얻기 위한 근무의무 조건을 강화했다. 근무 의지에 따라 복지수급 기간에 제한을 둔 것이다. 그 결과 국가가 전액 지원하는 공공부조 수급자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고 저소득 한부모 가구의 노동활동이 증가하는 등 변화를 이뤘다.

복지의 유토피아로 불리는 스웨덴 역시 1990년 경제 악화로 인해 위기를 겪으며 근로와 복지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당시 경제 상황으로 인해 실업률이 높아져 일하지 않고 복지 서비스만 누리는 국민이 많아진 탓이다. 스웨덴은 근로복지연계프로그램을 통해 수급자들의 노동 의지를 자극하고 직업훈련과 취업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 타이밍이 중요…국민 희생 따르는 개혁

재정 고갈 등 문제가 터진 뒤 복지정책에 손을 대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전문가들은 “복지개혁에 한발 늦었던 일본과, 미리 복지시스템을 고친 독일 프랑스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국민 희생이 따르더라도 선제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1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을 실시했다. 종신고용이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사라져 가고 비정규직이 노동인구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고용 사정이 악화되면서 수급자는 늘고 재원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예측은 일본의 경제 상황을 전망한 학자들이 이미 예견했던 것이지만 일본은 개혁의 타이밍을 놓쳤다.

같은 시기 독일과 프랑스 등 복지선진국들은 보험료 부담과 보험금 혜택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세대 간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했다. 특히 독일은 2005년부터 2029년까지 연금개혁의 과도기로 설정해 수령자 연령을 단계적으로 67세까지 높이기로 했다. 소득 대비 연금수령액도 52%에서 43%까지 낮추는 방식의 재설계를 감행했다. 그 결과 독일 정부는 “과감한 개혁을 통해 연금 재정 고갈 문제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급자의 반발을 고려해 과도기 기간을 길게 두고 정밀하게 제도를 조정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소득세 의존적 재원조달 방식도 바꿔야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두 가지 큰 통로는 사회보험료와 조세다. 우리나라는 조세에 대한 재원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한국은 소득세에 의존해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경향이 크다”며 “이러면 지속 가능한 재원조달이 어렵다”고 말했다.

노 박사는 우리나라가 배워야 하는 재원조달 방식으로 프랑스의 ‘일반사회기여금 조성’을 꼽는다. 일반사회기여금은 일종의 사회보장세로 소득세 소비세 재산세 부유세 등을 복합적으로 결합해 재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다각적으로 결합된 재원을 마련하는 이유는 소득세 하나만으로는 충분하게 재원을 조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 박사는 “복지에 필요한 증세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도 소득과 소비, 재산, 상속 등에 부여하는 다양한 세금을 복지재원으로 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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