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차장
이번 회의에 참석한 정상 가운데 경호가 가장 삼엄한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올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묵은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툭하면 작동을 멈췄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동할 때 누구도 움직일 수 없도록 취한 조치다. 그 호텔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무려 18개국의 정상급 인사가 묵고 있었다. 귀국 비행기에서 청와대 직원들은 백악관 경호실의 ‘텃세’에 불평을 쏟아냈다.
대통령 경호는 한순간의 방심이 치명적 결과를 낳기에 애초 ‘과잉’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호 실패 사례를 보면 과잉경호 논란을 피하려다 빚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만 해도 그렇다. 보수 논객 조갑제 씨는 육 여사가 자신의 죽음에 스스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사건이 터진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에 앞서 열린 그해 3·1절 기념식 당시 경호실은 외국 대사 부인들의 소지품을 모두 물품보관소에 맡기도록 했다. 이에 육 여사가 과잉경호라며 항의하자 이후 외국인에 대한 검문검색이 느슨해졌고 결국 일본인 행세를 한 재일교포에게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은 경호원을 다룬 영화 중 1993년 개봉한 ‘사선에서’를 최고로 꼽는다. 영화에서 경호원들은 맨홀 뚜껑까지 열어 도로 밑을 점검하고 폭발물을 숨길 수 있다며 우체통까지 철거한다. 여기에 대통령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경호원의 투혼은 영화의 백미다.
경호원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우리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위험 요인을 줄이려는 경호실과 국민과의 접촉면을 넓히려는 비서실 간의 끊임없는 다툼이다. 영화에서 비서실장쯤으로 보이는 인물은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경호 책임자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우리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거다.” 국민과 괴리된 대통령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과연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이 국민에게 다가섬과 고립됨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다퉈봤을지 의문이다.
―베이징에서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