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로 불린 비운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랑과 인생을 그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김소현(오른쪽)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진 두 개의 얼굴을 완벽하게 표현해 매회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회전무대의 효과 최대한 끌어내 볼거리 제공
김소현, 마리 앙투아네트 두 얼굴 완벽 연기
1막 ‘운명의 수레바퀴’ 합창은 최고 명장면
“당신 곁에서 평생 지켜주겠어”라는 남자의 약속을 믿는가. 아니면, 지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믿고 싶은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을 ‘아프게’ 파헤치는 극이다. 등장인물의 개연성 부족, 프랑스혁명의 폄하, 역사왜곡의 논란이 있지만 작가는 말없이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뻗고 있다.
국내 뮤지컬 무대 메커니즘의 현 수준을 과시할만한 무대는 인상적이었다. 회전무대의 효과를 최대한 끌어냈다. 한 가지. 무대 위에 다시 세운 경사무대는 과연 이 작품이 자랑할만한 볼거리였지만 무대에서 가까운 앞쪽 좌석의 경우 경사무대의 정리되지 못한 밑 부분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어쩐지 기울어진 평상 위에서 배우들이 아슬아슬 연기하는 느낌이랄까.
뭐니 뭐니 해도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김소현의 연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소현으로서는 본인 연기인생의 ‘정점’을 찍은 듯하다. 그가 지닌 특유의 기품이 완벽하게 마리 앙투아네트에 투영됐다.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로서의 얼굴과 두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이 배역을 위해 단단히 칼날을 벼르고 나온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잃고 연금마저 당한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도도한 기품을 잃지 않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병사들이 아들을 앗아가자 일거에 무너져 내린다. 이 장면에서 김소현은 ‘국모’가 아닌 ‘생모’의 찢어지는 심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 정도의 박력으로 밀어붙인다.
김소현과 더블 캐스팅된 옥주현의 마리 앙투아네트도 자못 궁금하다. 치열한 분석을 통한 교과서적 캐릭터 해석이 장기인 옥주현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김소현과 확실히 다른 인물을 보여줄 듯하다.
1막 마지막 넘버인 ‘운명의 수레바퀴’의 합창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명장면. 웅장한 합창을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하며 천장까지 솟구치는 김소현과 차지연의 ‘소리’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