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금이 중요하다는 말 알지? 그렇게 살고 있어.”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는 나의 안부 인사에 선생님은 그렇게 답하셨다. “지금, 소금, 황금, 이렇게 세 가지요?”라고 재차 묻자 그게 아니라고 하신다.
그래서 선생님은 인사동에 자주 나온다고 하신다. 정년퇴직 후 독서하고 시를 쓰면서 틈틈이 전시장을 둘러보며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접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러다 보니 오늘처럼 40년 전 제자와 우연한 만남도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고 하신다. 나 역시 실잠자리처럼 가냘프고 질문이 많던 학생이었다고 나를 기억해주는 선생님과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소녀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누렸다.
우리 부부가 ‘다 알아’라는 별명을 붙여준 사람이 있다.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부터 도무지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도 전에 “다 알고 있으니 됐고”였다.
그런데 내 말만 하면 두 가지 점에서 손해다.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니 손해이고, 남이 아는 것을 들을 기회를 놓치니 손해다. 그런데도 그 ‘다 알아’ 씨는 헤어질 때까지 자기 말만 계속한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궁금한 게 없을 것이고 그러면 생각이 좁아지고 굳어질 수밖에 없다. 다 안다면서 바로 그것이 퇴화의 시작이라는 것은 모른다. 아이들은 밤낮없이 “엄마, 이게 뭐야? 이건 왜 그래? 왜? 왜? 왜?” 하고 묻는다. 세상 일이 다 궁금하고 신기하니까 사는 게 지루할 틈이 없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