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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주성원]양궁의 규정 혁신 정부의 규제 고집

입력 | 2014-11-14 03:00:00


주성원 산업부 차장

“휴일에 직원들 없는 사무실에서 그 기사를 봤던 저로서는 너무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네요. 앞으로 우리 회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준 것 같아서…. 직원들에게 꼭 읽으라고 권할 것입니다.”

쑥스럽지만 최근 쓴 ‘세계 최강 양궁처럼 제조업도 텐, 텐, 텐’ 기사(본보 8일자 1면, 4면, 5면)를 보고 익명의 독자가 보내온 e메일 내용 일부다. 아마도 독자는 평소 ‘혁신’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됐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말이 나온 김에 다시 양궁 이야기를 꺼내 보자. 양궁은 국제대회 룰이 자주 바뀌는 종목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4차례나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세계선수권대회 경기 방식은 이와는 또 다르다. 거리별 총점 집계에서 세트제 토너먼트까지, 규칙 변경은 거듭됐다.

그래도 한국 양궁은 세계 최강이다. 비결 중 하나는 대표 선발 방식이다. 국제대회를 앞두고 매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것은 20년 이상 이어진 전통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다시 치열한 경쟁을 치러 살아남아야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국제대회 규칙만큼이나 대표 선발전 방식도 자주 바뀐다. 대한양궁협회는 총점제와 세트제, 토너먼트와 리그를 번갈아 치르면서 세계무대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만한 선수를 뽑아왔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발전 방식 변경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선발전 방식은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대한양궁협회 강화위원 등이 결정하지만 대회를 앞두고는 참가 팀 지도자들이 모두 모인 회의를 열어 건의사항을 수렴한다. 윤병선 양궁협회 사무국장은 “경기 시작 시간이 특정 팀에 불리하다는 지적을 받기라도 하면 대회 전날이라도 시간을 수정한다”고 말했다. 최상의 결과를 위해 규정을 혁신해 나가는 셈이다.

이제 화제를 경제 정책으로 돌려보자. 최근 논란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이야기다.

지금까지 경과만 보면 이 법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제조사와 판매점은 휴대전화가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다. 소비자는 보조금을 적게 받으니 단말기 구입 가격이 높아졌다고 불만이다. 마케팅 비용이 제한돼 이동통신사의 시장 점유율이 고착되면 2위나 3위 통신업체로서도 좋을 것이 없다. 신규 가입도 줄었다. 부작용이 불거진 뒤에도 정부는 개선 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제조사와 통신사에 가격을 낮추라고 압력을 넣었다.

요금과 단말기 가격 인하, 소비자 차별 해소라는 입법 취지에는 수긍하지만 정작 법 시행이 가져올 영향에 대한 예측은 틀렸다. 시장에 대한 분석도 고민도 없었다. 바꿔야 할 때라면 과감히 바꾸는 것도 혁신이지만 정부는 그럴 의지마저 없어 보인다.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양궁계의 ‘규정’과 과열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한편 법을 만들었으니 따르라며 윽박지르는 정부의 ‘규제’는 방식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엄연한 차이가 난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