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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피플]美 공권력의 상징 뉴욕경찰청… 45년 근무한 라파엘 피녜이로 씨

입력 | 2014-11-15 03:00:00

“친근한 소통 311, 엄격한 권위 911… 이게 뉴욕경찰의 힘”




라파엘 피녜이로 뉴욕시경(NYPD) 제1차장이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에 있는 청사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NYP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NYPD의 권위는 지역 주민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회가 되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물질하는 해녀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할리우드 영화에서 거대 범죄조직을 막아내는 역할을 단골로 맡고 있는 NYPD. New York City Police Department(뉴욕시 경찰청)의 약자다. 이름으로 보면 일개 경찰청에 불과한 데 미국 공권력의 상징처럼 인식된다.

뉴욕 맨해튼에선 매일 수많은 NYPD 조직원들과 마주친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도 있고 영화배우 같은 ‘몸짱’ 조직원이 있는 반면 옆집 아저씨 아줌마 같은 뚱뚱한 이도 있다. 그 어떤 NYPD 조직원이든 그들의 손짓 눈짓 하나에 시민들은 마치 ‘로봇처럼’ 척척 따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특히 뉴욕에선 경찰관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난달 23일 ‘NYPD 2인자’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바로 라파엘 피녜이로 뉴욕시경 제1차장(65)으로 NYPD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1970년 이래로 45년째 NYPD에 근무했다. 스페인 출신 아버지와 쿠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2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히스패닉계에선 처음으로 NYPD 2인자에 올랐다. 그는 퇴직(10월 31일)을 앞두고 맨해튼 남쪽에 있는 NYPD 청사의 집무실에서 1시간 반 정도 시간을 내줬다. 그는 “NYPD 45년을 정리하는 퇴직 기념 인터뷰를 한국의 대표 언론 동아일보와 하게 됐다”며 기자를 반겼다.



“경찰 신뢰는 주민과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에서”

―NYPD는 미국 내 다른 지역의 경찰, 다른 나라의 경찰과 무엇이 다른가.

“정복 경찰 3만5000명, 민간인 직원 1만5000명을 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 경찰청이다. NYPD 내 외국어 능력자들은 총 75∼80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해외에도 10여 개 파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어를 활용한 NYPD의 수사능력은 연방수사국(FBI)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FBI가 대테러 수사를 할 때 외국어 자원 협조를 NYPD에 요청하는 때도 자주 있다고 한다. NYPD 관계자는 “만약 중국인과 연루된 조직범죄가 터졌다고 가정하면 중국어를 구사하는 NYPD 조직원을 그 수사팀에 대거 배치한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선 1년 내내 감청(監聽) 업무만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올 9월 40만 명이 넘게 참여한 ‘기후 행진’ 현장을 취재했다. NYPD의 시위 통제와 질서 유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위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정보 수집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시위 주최 측과 충분히 대화하고 경찰이 시위대로 변장해 들어가서 시위의 흐름을 계속 살피며 보고한다. 각종 인터넷 정보도 면밀히 살핀다. 시위 전에는 철저한 대비 계획을 세우고 다 끝난 뒤에는 반드시 리뷰(점검) 회의를 해서 다음을 준비한다.”

―한국에선 경찰이 폭력 시위대나 술 취한 민원인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때도 많다. NYPD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나.

“지역 주민과 수많은 대화와 소통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위원회 등을 통해 지역주민의 고민을 청취하고 해결하려 노력한다. 일종의 민원신고 전화인 311 시스템도 그런 소통에 도움이 된다. 동네에 낡은 자동차가 버려져 있다든지, 소음 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문제를 311로 신고하면 만성적인 문제는 지역 경찰서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 주민과 대화해 해결한다. 경찰이 범죄신고 911로 들어온 사건만 처리하는 게 아니다.”

물론 311 민원신고에서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911로 연결돼 수사에 착수하기도 하고 반대로 911로 신고됐지만 사소한 민원이면 311 시스템으로 돌리기도 한다. 주민의 신고나 불만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돼 처리된다는 것이다.



철저한 직업의식과 사전 대비, 사후 보완

―세월호 참사로 한국은 여전히 아프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의 미흡한 구조작업 등에 국민적 분노도 많았다.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다 알지 못해 말하기 조심스럽다. 단, 해경의 초기 대응에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우선 그런 배 침몰 사고에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가 사전에 철저히 마련돼 있었느냐는 점이다. NYPD에는 ‘플랜 A’ ‘플랜 B’ ‘플랜 C’ 등 다양한 상황에 따른 각각의 대응 시나리오가 다 있다. 둘째, 현장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했느냐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고위직 지휘관이 현장을 장악하고 구조작업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지휘했느냐가 궁금하다. 셋째, 충분한 구조장비가 동원됐느냐는 점이다. 그리고 사전 구조훈련이 얼마나 잘돼 있었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마땅히 대답하거나 설명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뉴욕은 ‘9·11테러’란 큰 아픔을 겪었다.


“당시 화염 속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다 병에 걸려 앓다가 숨진 NYPD 조직원이 지금도 적지 않다. 9·11 때 현장에 투입된 많은 소방관과 항만청 경찰, NYPD는 건물이 무너지는 걸 알면서도 (구조를 위해) 위로, 위로 올라갔다. 우린 그렇게 훈련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희생자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We stayed there with people)’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9·11테러 당시 소방대원 343명, 항만청 경찰 37명, NYPD 조직원 23명이 현장에서 숨졌다고 NYPD 측은 밝혔다.

―9·11 이후 NYPD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조직상으로는 대테러국, 정보국 등이 생겼다. NYPD는 평시 근무 때도 방독마스크를 반드시 휴대하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뉴욕이 늘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경계해야 한다.”

9·11 이후 NYPD가 도입한 수사 시스템은 ‘영역 인식 체계(DAS)’와 ‘실시간 범죄정보 센터(RTCC)’이다. DAS는 맨해튼 2곳에 설치돼 있으며 수천 개의 폐쇄회로(CC)TV를 연결해 수상한 물체나 사람을 전자시스템이 찾아내는 체계이다. 공공장소에 이상한 가방이 있거나 일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패턴을 분석하는 DAS가 ‘경고음’을 울리는 방식이다. RTCC는 범죄가 발생하면 그 주변의 용의자 현황, 피해자 신원, 주변 차량 차적 조회 등을 한 번에 신속하게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9·11 이전에는 각각의 정보를 얻는 통로나 기관이 달라서 정보 수집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 때문에 수사 타이밍을 놓치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NYPD는 ‘위장 경찰’을 수사에 많이 활용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마약 밀매 지역에서 피자가게 주인으로 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월급도 현금으로만 받으며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사는 경찰도 있다. 그야말로 영화 같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NYPD 내 대표적 친한파’

그는 “피델 카스트로 혁명 체제가 싫어서 어머니와 함께 먼저 1961년 미국으로 왔다. 외삼촌 2명이 뉴욕에 살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쿠바에서 떠날 때 ‘담배 시가 한 박스’ 이외에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했다고 했다. 맨몸으로 미국 땅을 밟은 셈이다. 어머니가 옷 수선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위험하고 힘든 경찰이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는가.

“전혀 없다. NYPD에서 일하며 너무 많은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NYPD 내에선 당신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의한다. 쿠바에서 이민 왔고 NYPD엔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런데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니 많은 기회와 자리가 생겼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를 상사로 모셨던 한 경관은 “술을 한잔도 안 마시고 독서가 취미다. 어떤 식으로든 한눈파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뉴욕 교포사회나 총영사관 등에선 그를 ‘NYPD 내 최고위직 친한파’라고도 부른다. 그는 2012년 경찰대에서 첨단 경비 및 수사 체계 등을 강연한 적이 있다. 그가 NYPD 인사국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엔 한국계 NYPD 모임을 내부 공식 단체로 인정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결성된 ‘뉴욕시경 한인경찰관협회(Korean-American Officers Association·KAOA)’는 당시 한인 사회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NYPD 내 한국계 인맥을 조직화 및 세력화하는 길이 처음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KAOA의 조직적 입김이 채용 과정에도 적지 않게 작용해 2003년 당시 20여 명에 불과했던 NYPD 내 한국계 경찰은 최근 300명을 넘어섰다.

한 한국계 NYPD 조직원은 “미국 사회에선 뭉치지 않으면 제대로 상대해 주거나 대우해주지 않는 경향이 (한국보다) 더 강한 것 같다”며 “피녜이로 차장은 KAOA 결성 때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한국 관련 업무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국계 경찰들에 따르면 올 9월 유엔 총회 때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NYPD의 ‘너무 특별한 경호’는 피녜이로 차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JFK 공항에서 맨해튼 숙소로 이동할 때 러시아워인데도 고속도로 입구를 모두 막고 헬기까지 띄우는 특급 경호가 이뤄졌다. NYPD 내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버금하는 전례 없는 경호”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 대통령에 대해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라”는 피녜이로 차장의 특급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뉴욕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그가 한인 사회나 한미 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면 ‘대한민국 명예국민’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201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기억에 생생하다. 특히 물질하는 해녀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희한하게도 물질은 전부 여자만 하던데, (한국) 남자들은 (물이 무서운) ‘겁쟁이’여서 그런가.”(웃음)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