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는 항구다.’ 어느 시인의 시 제목이다. 문학의 비유(比喩)는 결합하는 두 관념의 거리가 멀수록(멀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이 커져 기억에 남는다. 뉴스도 문학의 비유와 비슷한 데가 있다. 어떤 일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 어떤 일을 했을 때 화제가 된다. 1997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진영 씨가 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올해 수석 합격의 영광은 현직 경찰이 차지했다. 경찰대 출신의 김신호 경위는 “3년 4개월 동안 매일 오전 5시에 경찰서에 출근해 업무시작 전까지, 업무가 끝난 뒤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하루 평균 9시간씩 책과 씨름했다”고 말했다. 경찰대 출신은 경위로 시작해 빠르면 4, 5년, 늦어도 7, 8년이면 경감으로 승진한다. 2002년 임용된 김 경위는 12년째 경위다. 사시 공부를 시작한 남모를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법시험이 끝나면 훈훈한 화제의 인물이 나오곤 한다. 10년 전인 200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장승수 씨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막노동판 일꾼 출신의 그는 1996년 서울대 법대에 수석 합격했다는 소식을 공사판에서 들었다. 장 씨는 합격 소감으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해 공부가 힘들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는 세 차례의 도전 끝에 사시에 합격했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고시로 인생역전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 신림동 고시촌이 시들해졌다. 한때 한 해 1000명이 넘던 사시 합격자가 점점 줄어 올해는 204명이다. 2017년이 되면 사시 자체가 폐지된다. 2008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은 서울대 법대도 2017년 말 사라진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등록금이 비싸고 다른 일과 병행하기도 어렵다. 인생역전의 꿈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사시 존치론을 주장한다. 그래서 사시를 남겨 두려는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