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입어야 할 것
―이근화(1976∼)
나의 기분이 나를 밀어낸다
생각하는 기계처럼
다리를 허리를 쭉쭉 늘려본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화초가 말라 죽는다
뼈 있는 말처럼 손가락처럼
일정한 방향을 가리킨다
죽으면 죽은 기분이 날 것이다
아직 우리는 웃고 말하고 기분을 낸다
먹다가 자다가 불쑥 일어나는 감정이
어둠 속에서 별 의미 없이 전달되어서
우리는 바쁘게 우리를 밀어낸다
나의 기분은 머리카락에 감긴다
소리 내어 읽으면 정말 알 것 같다
청바지를 입는 것은 기분이 좋다
얼마간 뻑뻑하고 더러워도 모르겠고
마구 파래지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구겨지지만
나는 그것이 내 기분과 같아서
청바지를 입어야 할 것
화자는 사회에 발들인지 얼마 안 되나보다. ‘뼈 있는 말처럼 손가락처럼//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화자는 말라 죽을 것처럼 힘들다. 그 기분을 드러낼 수도 없다. 꾹꾹 참다가 자다가도 벌떡 몸을 일으키며 “아,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부르짖을 뿐이다. 우리는 기분을 전환하려, 혹은 자기 기분을 나타내려 그날 입을 옷을 고른다. 화자의 오늘 기분은 청바지다.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마구 파래지는 것 같’은 청바지! 당신들은 이걸 못 입죠? 청춘의 바지를 입을 때, ‘아직 우리는 웃고 말하고 기분을 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