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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책 저자들은 어떻게 재테크 할까

입력 | 2014-11-17 03:00:00

[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28>




홍수용 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테크 책 필자들이 자기 재산을 늘려온 비결을 듣다보면 대학입시 수석 학생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고 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너무 원론적이어서 혹시 정말 숨기고 있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먼저 한국의 재테크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외환위기 당시인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은행 금리가 연 20% 이상이었으니 굳이 여기저기 돈을 굴릴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재테크란 말도 없었다.

재테크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은행 기준금리가 떨어진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기준금리는 2001년 4%에서 2014년 현재 2%로 급락했다. 은행에 넣어두기만 하면 자동으로 이자가 붙는 금리가 반 토막이 났으니 돈을 굴려 수익을 내기가 2배로 어려워진 셈이다. 재테크 책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독자의 가려운 곳, 궁금한 대목을 제대로 긁어주는 실력파 저자와 단지 겉모양만 번듯하게 만들어 생활비를 벌려는 생계형 저자들 사이의 격차도 커졌다.

제법 실력파로 알려진 저자 가운데 기자와 개인적 인연이 있어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들에게 “재테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남들을 향해 원론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투자하라”는 나열식 조언이 아닌 “나는 정말 이렇게 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건까지 붙였다. 이들은 속내를 털어놓을 때면 목소리 톤이 낮아졌고 말하는 속도도 느려졌다.

이들이 소개한 자신들의 재테크 특징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적당히’ 위험한 곳에 투자한다 △장기 투자처와 중기 투자처를 나눠 관리한다 △유행하는 금융상품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제 혜택을 꼭 이용한다 △대인관계를 깊고 길게 유지한다 △인간관계 때문에 보험에 들어야 할 때는 보장성 보험만 든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돈 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2001년)라는 책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상건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연구소 상무는 집을 제외한 자산을 대부분 주식형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하고 있다. 단, 한 펀드에 돈을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가치주펀드, 배당주펀드, 해외펀드, 연금펀드 등으로 쪼개 넣고 있다고 했다. 이를 장기 투자처와 중기 투자처로 나눈다. 연금펀드 등은 평생 갖고 가야 할 투자처로 보고 절대 깨지 않는 반면 해외펀드 등은 2∼3년 단위로 갈아타기를 하는 식이다.

재테크 고수 중에는 채권형펀드 같은 안전한 투자처라고 분류되는 펀드에는 돈을 별로 넣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는 투자 이론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긴 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꽤 현실적인 면이 있었다. 초저금리 시대에 여유자금이 많지 않은 개인이 주식, 채권, 예금,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 돈을 쪼개 고루 투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 투자 비중을 높이되 주식형펀드처럼 원금손실 부담이 다소 있는 분야에 10년 이상 꾸준히 투자해 위험을 적당하게 관리하는 것이 노후 대비에 유리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저자들의 상당수는 금융권에 종사하고 있지만 증권가에서 유행하는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파생금융상품에는 거의 목돈을 넣지 않고 있었다. ELS처럼 유행을 따르는 투자처는 3년 이상 꾸준히 투자할 수 없다고 판단해 재무 설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A 씨도 “ELS가 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포장되지만 엔화 가치 급락 등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변수에 출렁거릴 위험이 많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재테크 고수들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라는 3대 연금에는 예외 없이 모두 가입하고 있었다. 물가상승률을 보전해주는 기능(국민연금)과 세제 혜택(퇴직연금, 개인연금)이 있는 상품은 기본적으로 들고 가야 한다는 식이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연금에 대해 논란이 생긴다고 홧김에 연금을 해지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했다.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재무 설계를 망가뜨리는 변수는 ‘인간관계’였다. 사실 주변 지인들에게서 보험에 가입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난감할 때가 누구나 한두 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험은 한 상품마다 매달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씩 적립금이 들기 때문에 정기적인 재무 설계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재테크 베스트셀러를 낸 재테크 고수들은 보장성 보험을 들되 만기환급금이 없는 조건으로 가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축성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드물었다. B 씨는 “변액연금보험처럼 돈을 불리는 기능을 강조하는 보험이 있는데 굳이 보험을 통해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보험은 순수하게 상해, 질병, 사망 같은 위험에 대비하는 목적으로 들고 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수능 수석 학생들이 하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말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교과서 내용을 뼈대로 기본 문제를 숙지하고 응용 문제로 심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재테크 세계도 마찬가지다. 고수들은 “이제는 더 벌어서 더 쓰는 고성장의 시대가 아니라 덜 벌고 덜 쓰는 저성장의 시대라는 점을 재테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테크도 과외교사나 유명 참고서의 테크닉보다는 교과서 중심의 원칙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한 분야가 된 셈이다.

역대 재테크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를 쓴 정철진 경제평론가는 “재테크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을 읽고 난 후 마치 자신이 돈을 번 듯한 희열을 느끼는 것에만 만족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