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사진부 차장
“대통령의 운동기구 등은 대통령의 안위와 경호와 관계되고 대통령의 안위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항이며 따라서 외국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도…양해”라는 내용이었다. 김 실장과 청와대의 답답한 마음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김 실장이 의도적으로 메모를 노출시킨 것일 수도 있다는 게 현장 기자들의 대체적 반응이었다.
국가와 대통령에게 보안과 안위에 대한 중요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과 영국에서 한국 기자들이 그 나라 대통령이나 총리를 만나려면 두세 시간 전부터 샅샅이 짐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카메라 장비 자체가 위험 요소이고 사진이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간다. 국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국가 지도자들의 일정을 보고 있다. 프랑스 엘리제궁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의 주간 일정이 미리 나와 있고 자동차 수리공의 인터뷰까지 공개되어 있다.
통제와 비밀주의만으로 현재와 같은 영상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에 주저하기보다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헬스 하는 대통령, 산책하면서 바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기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어떨까? 청와대 비서관들은 논리를 정당화하는 계산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지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시진핑은 중국이 만든 와인을 준비했고 오바마는 화이트와 레드 와인을 한번씩 맛보는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연출했다. 세계에 자국 와인을 자랑하고 싶은 중국의 감정을 배려한 것이다. 세계 지도자들의 사진은 그렇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 우리도 그렇겠지라고 믿고 싶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