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 <3> 안전 패러다임을 바꾸자 (下) ‘공짜 안전’은 없다
싱크홀은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국에서 125개가 발생했다. 서울이 61개(48.8%)로 가장 많았는데 서울이 가장 먼저 개발된 도시이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이다. 서울 전체 하수관로 중 30.5%(3174km)가 설치된 지 50년이 넘었다.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고 당장 교체를 해야 할 곳도 상당하다. 서울 곳곳에 생긴 싱크홀은 안전은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수관로뿐 아니다. 서울시내 다리 도로 등 도시 기반시설뿐 아니라 빌딩 등 주택시설 대부분이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에 들어섰다. 서울은 새로 짓기보다 유지·보수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들어섰으며 관리비용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 서울시 예산 절반밖에 확보 못해 정부 SOS
지하에 설치된 지름 60cm의 한 하수관로 상층부에 농구공 크기(지름 24cm)의 구멍이 나 있다(왼쪽 위). 서울에 있는 이런 종류의 노후 하수관로는 구멍으로 토사가 유입돼 싱크홀 등 지반 침하 현상의 주요 원인이 된다.
땅속뿐 아니라 땅 위도 노후화가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 도로와 다리 등 서울시가 관리하는 기반시설은 2000년 423곳에서 올해 541곳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57%(306곳)가 20년 이상 경과했다. 2030년이면 30년 이상 노후시설물이 83%에 달한다.
○ 예방보다 사고 처리에 비용 10배 들어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예산과 인력을 부랴부랴 투입해 뒷수습에 급급한 모습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반복돼 왔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1년 전 정밀점검에서 다리 아래 세 곳 정도가 용접이 불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보수는 미뤄졌고 최소한의 비용과 인력조차 투입하지 않은 대가는 참혹했다. 사고 이후 대대적인 한강 다리 점검과 보수가 뒤따랐고 서울시 안전관리 예산은 6, 7배 증가해 2001년 4288억 원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사고가 잠잠해지자 안전 예산은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때에 비해 올해는 1970억 원으로 54%나 감소했다. 연초부터 사고가 줄줄이 이어지자 정부는 내년 안전예산을 올해(12조4000억 원)보다 2조2000억 원을 증액했다. 그러나 역시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투자를 꺼리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 시간과 불편 감수해야…‘쉬운 안전은 없다’
안전에 드는 비용은 단지 ‘돈’만이 아니다. 시민들의 시간과 불편도 포함된다. 서울시 도로포장 공사는 보통 밤 12시∼오전 4시에 한다.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서다. 어두운 곳에서 공사하니 제대로 포장이 됐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또 미처 마르기도 전에 차가 다닌다. 낮 공사보다 비용은 더 드는데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 도로 포장 주기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불편을 참지 못하면 그만큼 세금을 더 쓰게 되는 것이다.
과적 차량과 과속 차량 역시 도로를 파손하고 다리를 위험하게 하는 주범이다. 시속 100km, 30t 무게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된 다리를 과적 차량이 과속으로 지나가면 다리는 그만큼 수명이 짧아진다. 물론 시속 130km, 50t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다리를 지으면 되지만 그러면 건설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빨리, 많이 실어 나르면 개인은 이익을 보지만 사회 전체로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불편이 늘어나도 이를 감수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이정술 중앙민방위방재교육원장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한 도시 리모델링도 급하지만 법과 안전규정을 무시하고 빨리, 대충 해치우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안전사회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