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위협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쇼스타코비치. 동아일보DB
몇 년 전 쇼스타코비치가 푸시킨의 시에 곡을 붙인 ‘부활’이라는 가곡을 들어보고 싶었는데, 음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 인터넷에서 ‘rebirth’라는 검색어로 동영상을 찾아보니 바로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가사도 찾아보았습니다.
‘자칭 예술가라는 야만인이/게으른 붓을 들어/천재의 그림 위에 덧칠을 했다/세월이 흐르면서 덧칠은 떨어져나가고/천재의 그림이 다시 나타났다(…).’
이어 관영 일간지 프라우다에 혹독한 논설이 실렸습니다. 이 작품이 ‘부르주아적이고 혼돈 그 자체’라며 사회주의 예술가들은 이런 방종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곡가의 운명이 위험했습니다.
이듬해인 1937년, 쇼스타코비치는 마지막 4악장이 굳건한 승리의 행진처럼 들리는 교향곡 5번을 발표했습니다. 30분 동안 앙코르 함성이 쏟아졌고, 관영 매체들도 찬사를 보냈습니다. 작곡가는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쇼스타코비치는 조용히 가곡 ‘부활’을 내놓았습니다. 그 반주부의 일부는 교향곡 5번 마지막 악장과 거의 똑같습니다. 천재의 그림 위에 가해진 야만인의 덧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드러난 천재의 손길….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마리스 얀손스 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합니다.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같은 곡을 연주합니다.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은 17년 전 일주일 동안 이들의 연습과 녹음을 지켜본 일이 있어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콘서트를 감상하실 관객께서는 4악장의 외견상 화려함뿐 아니라 그 뒤에 감춰졌던 쇼스타코비치 내면의 투쟁을 상기해 보시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