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최해돈(1968~)
비 오는 날. 물방울. 물방울. 보도블록 위에 외출 나온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이 톡톡 튕긴다. 물방울이 걸어온다. 걸어오면서 울고 있다. 울고 있는 물방울 옆에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이 외출 나온 보도블록 위에 고요가 한 켤레 두 켤레 쌓인다. 그 고요 위에 물방울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이쪽에도 물방울. 저쪽에도 물방울. 물방울이 물방울을 만나고 물방울이 물방울을 만난다. 물방울과 물방울이 서로 부딪힌다. 물방울이 웃는다. 물방울이 물방울의 길을 간다. 보도블록 위는 온통 물방울 나라. 여기도 물방울. 저기도 물방울. 여기저기에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을 바라보는 마음 한쪽에 물방울이 여러 개 생긴다. 무늬가 없다. 다만 깊어 간다. 물방울을 꺼내어 물방울 옆에 놓는다. 물방울이 굴러간다. 데굴데굴 굴러간다. 물방울이 물방울과 물방울의 틈을 지나간다. 틈을 지나가는 큰 물방울, 작은 물방울. 물방울이 아프다. 통, 통, 통, 물방울이 굴러간다. 물방울을 따라 나도 굴러간다. 시간을 깎으며 가는 저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 위에 내려앉는 숨결들. 숨결들이 눈을 씻는다. 물방울이 물방울을 만든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두 눈을 크게 뜬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