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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전문기자의 안보포커스]방위사업청 인사개혁이 비리 척결의 출발점

입력 | 2014-11-19 03:00:00

윤상호 전문기자


“나는 금품이나 향응 수수로 적발되면 스스로 사직할 것을 서약합니다.”

2011년 8월 서울 용산구 방위사업청(방사청) 대회의실. 노대래 당시 방사청장을 비롯한 과장 팀장급 이상 직원 160여 명이 ‘청렴실천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비리 부정에 연루되면 스스로 옷을 벗겠다”며 부패 척결에 앞장설 것을 맹세했다.

한 직원(공무원)이 납품원가를 올려주는 대가로 식자재 군납업체로부터 수천만 원을 수뢰한 비리가 경찰에 적발된 직후였다. 고가의 무기 장비뿐만 아니라 장병 먹을거리까지 뻗친 방사청의 ‘비리 퍼레이드’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방산 및 군납 비리 근절을 내걸고 창설된 방사청이 ‘부패 온상’으로 타락했다는 여론의 질타도 빗발쳤다. 방사청은 총체적 위기로 보고 배수의 진을 치는 각오로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모든 직원이 서로 청렴도를 평가하고, 특정 부서에 5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각종 대책도 발표했다.

하지만 방사청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일각에서 ‘폐지론’까지 거론될 만큼 개청 8년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통영함 납품 비리에서 보듯 ‘군피아(군대+마피아)’, ‘방피아(방산+마피아)’가 똬리를 튼 방사청 내에는 부패의 고린내가 진동한다. 내부 직원이 군 출신 업자와 결탁해 부실 불량 무기와 장비를 공급하는 구태의연한 ‘비리사슬’도 변한 게 없다. 사태가 터진 뒤 부랴부랴 ‘백화점식 대책’을 나열하는 모습도 과거와 똑같다. 이런 상태로는 방사청은 방향타를 잃고 망망대해를 헤매다 좌초하는 ‘난파선’의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백약 처방’이 난무하지만 근본적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방사청 내부 인사개혁에 있다고 본다. 우선 방사청 고위직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 방사청의 핵심 업무인 무기 도입 사업은 고도의 기술적 식견과 복잡한 사업 절차 전반을 꿰뚫는 노하우가 요구된다. 방사청 지휘부가 이런 능력과 경륜을 갖춰야 실무진의 비리 부패 전횡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방사청장과 차장을 비롯해 주요 고위직은 이런 기준과 거리가 먼 관료 등 외부인사로 채워졌다. 방사청에 근무하는 현역 장성과 고위 공무원들도 대부분 사업 관리 경험이나 관련 지식이 일천한 인사가 기용됐다. 일개 과장이 뒷돈을 받고 서류를 꾸며 수십억 원짜리 불량 장비 구매안을 올려도 ‘일사천리’로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수뇌부의 무능 탓이 크다. 방사청 고위층이 ‘고무도장’ 역할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내부 인적구조의 쇄신 작업도 필요하다. 현재 방사청의 현역과 민간인(공무원) 비율은 각각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주요 부서별 인적 편중 현상은 심각하다. 무기 도입 절차 전반을 관장하는 사업관리본부에는 현역이, 정책을 총괄하는 방사청 본부와 계약관리본부에는 공무원이 각각 쏠려 있다. 개청 초기부터 사업 관리는 무기체계를 잘 아는 현역이 주도하고, 정책 수립과 행정 업무는 공무원이 맡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적 구조는 방사청 내 현역과 공무원 간 ‘칸막이’를 만들었다. 비리 등 문제가 터지면 현역은 공무원의 전문성 부재를 탓하고, 공무원은 현역의 무사안일을 탓하며 갈등과 반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연과 학연을 동원한 줄서기와 보신주의(保身主義)도 그 부작용이다. 현역은 현역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소속 부서와 출신 기수에 따라 밀고 당겨주는 ‘패거리 문화’가 횡행한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는 인사 잡음으로 고스란히 투영된다. 지난해 방사청 공무원 승진 인사에서 5급(사무관)에서 4급(서기관) 승진자 10명 중 8명이 청 본부 소속이었다. 매년 현역 진급 결과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정부는 비리 부패의 토양이 된 방사청의 인사 난맥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능력을 갖춘 고위직을 기용하고, 현역과 공무원 간 벽을 허물어 상호 협조와 견제 구도를 만들어야 전문성과 투명성을 살릴 수 있다. 새 방사청장의 임명을 계기로 조속히 방사청 내 인사개혁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것이 방위사업 비리 부패와의 전쟁의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