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농업에서 미래를 연다]<上> ‘숨어있던 일자리’ 찾은 청년들
컴퓨터 마우스와 서류 대신 달걀과 닭모이를 든 젊은이들. 전남 곡성군 스트롱에그 협동조합 양계장에서 문국 이사(왼쪽)와 남궁지환 이사가 닭 500마리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스트롱에그 협동조합 제공
그러던 2005년, 해남에서 절인 배추를 파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배추를 정성 들여 재배하는 모습을 블로그에 올렸다. 뻔한 농산물이라도 이야깃거리를 붙여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해발 350m의 고랭지에서 청정한 지하수를 뽑아서 배추를 길렀다. 간수가 빠진 전남 신안군의 여름소금만 쓴다’는 식이다. 배추 값이 폭등하면서 대박이 났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억 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농산물 가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이듬해 아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못생긴 고구마와 호박이 제값을 못 받는 점을 눈여겨보고 이를 재료로 건강호두과자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계절별로 다른 작물을 팔아 현재 연매출 4억∼5억 원을 올리고 있다. 귀농 직후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 기껏 농사짓느냐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도 엄연한 사업’이라고 맞받아치는 여유가 생겼다. 김 씨는 “직장 생활을 해도 20년 뒤에는 퇴직해서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며 “남들보다 빨리 ‘평생 직업’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 축산업에 IT와 디자인, 브랜드 컨설팅 접목하다
젊은 귀농인이 늘면서 농업도 성장산업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284만 명인 국내 농촌 인구는 급속한 고령화로 매년 10만∼15만 명씩 감소하고 있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각종 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농업에 가세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시 말해 접근을 달리하면 농업과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서도 신규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귀농한 젊은이들 중에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벤처기업을 창업하듯 ‘창농(創農)’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친환경 달걀 생산협동조합인 ‘스트롱에그’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디자인과 IT, 브랜드 컨설팅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이 지난해 4월 세운 ‘축산 벤처기업’이다.
이런 사업을 구상하기까지는 창업 멤버들의 다양한 이력이 한몫했다. 중국 칭화(淸華)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신동호 대표(33)가 IT 시스템을 구축했고, 경영학을 공부한 남궁지환 이사(31)가 브랜드를 붙이고 건강한 달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디자이너였던 문국 이사(30)는 달걀 캐릭터를 그렸다. 이들은 “친구 3명이 퇴직금을 털어 회사를 세웠다”며 “친환경 달걀 생산에 그치지 않고 달걀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 연 2조 원에 이르는 국내 달걀 시장 판도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 블루베리 농장캠핑과 모바일 앱의 실험
농사라는 1차 산업에 그치지 않고 체험·관광 등 3차 산업을 결합한 창업도 각광받고 있다. 충북 음성군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하는 이석무 씨(31)는 농장에서 즐기는 캠핑을 ‘팜핑(농장을 뜻하는 팜과 캠핑의 합성어)’이라는 상품으로 발전시켰다. ‘강남 토박이’인 그는 4, 5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사 취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아 창업 아이템을 알아보다가 블루베리를 접했다. 고령화 시대에 항산화 식품인 블루베리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 단, 국내에도 블루베리 농장이 많은 만큼 단순히 블루베리를 파는 것만으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넣은 바비큐를 굽고 블루베리 잼을 만들며 블루베리 따는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도시인들에게 여유시간이 많아지면서 농촌 체험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 게 적중했다. 매년 1000∼1500명이 이곳에 몰리면서 그는 연매출 1억5000만 원을 거두고 있다. 이 씨는 “취업하지 않은 것에 후회는 없다”며 “농업을 통해 도시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것은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지리산과 섬진강 사이에 자리 잡은 경남 하동군의 한 공장. 3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직원 15명이 당근과 버섯, 고기 등 재료들을 썰어서 끓이고 있었다. 사장은 가장 젊은 오천호 씨(32). 당초 서울에서 죽집을 운영했던 그는 비싼 임차료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는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슬로시티로 선정한 고향 하동에서 죽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2011년 이유식업체인 ‘에코맘’을 세웠다.
김유영 abc@donga.com·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