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KDN이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4명에게 불법 정치후원금을 건넸다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적발됐다. 전 의원이 국가기관에서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2012년 11월 발의하자 한전KDN이 직원들에게 후원금을 내도록 공문을 돌려 491명이 1인당 약 10만 원씩 4869만 원을 의원들 계좌로 입금했다는 것이다. 한전KDN은 의원실을 찾아 ‘소프트웨어 수주에서 대기업을 배제하되 공공기관은 허용하도록’ 로비했고 전 의원은 지난해 2월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의원에게 돈을 주고 입법로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돈이 사실상 세금이라는 점은 더 큰 문제다. 1인당 10만 원씩 낸 정치후원금을 직원들은 연말정산 세액공제로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입법권을 무기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고 한전KDN은 회삿돈 한 푼 안 들이고 정치후원금 제도를 악용해 목적을 달성했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입법 로비를 한 셈이다.
한전KDN이 악용한 소액 후원금 제도는 유권자들이 소액으로 정치인을 후원하도록 하자는 뜻으로 2004년 도입됐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대기업으로부터 현금을 실은 차를 통째로 넘겨받는 방식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챙겨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얻자 대기업들의 정치자금 후원이 전면 금지됐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소액 후원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다. 조세특례제한법은 개인이 기부한 정치자금에 대해 1년에 10만 원까지는 세액공제 혜택을 줘 연말정산 때 90%가량을 되돌려주고 있다.
입법 로비에 후원금을 몰아주는 것은 법대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로비와 무관한 국민의 혈세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흘러가는 것 역시 방치해선 안 될 일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치후원금 세금 혜택을 아예 없애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