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남자 주인공과 그런 아들을 쫓아내려는 부모의 특명을 줄거리로 한 미국 영화 ‘Failure to Launch’의 한 장면. 국내에서는 2006년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로 개봉됐다. 동아일보DB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필자의 지인 A의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치대와 샌프란시스코 소재 퍼시픽대 치대를 졸업한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치과에서 월급쟁이 의사로 있다가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란 곳에 가서 정부가 운영하는 비영리 보건진료소에 취직했다. 데이비스는 대도시에 비하면 시골이어서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부족해 보건소가 그나마 그 지역의 의료 서비스를 담당한다.
로스앤젤레스가 본거지인 A가 시골에 둥지를 튼 가장 큰 이유는 학자금 부채 때문이었다. 그는 치대를 다니면서 총 25만 달러(약 2억6000만 원)를 융자받았다. 데이비스로 옮기기 전에도 월급 의사로 있으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매달 빚을 갚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고 병원들도 고전하기 시작하자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로스앤젤레스는 한인 의사들까지 포화 상태이다 보니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비록 전문직 의사라 할지라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되었고 직장의 안정성은 흔들렸다. 급기야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문직인 치과의사의 사정이 이렇다면 나머지 대졸 젊은이들의 상황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올 1월 초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미국 대학 졸업자의 70%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평균 대출액은 1인당 2만9400달러로 전년도 2만6000달러에서 13% 증가했다. 미국 대학 졸업생 10명 중 7명이 우리로 치면 3000만 원 정도의 빚을 떠안고 있다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들이 등록금을 대줄 형편이 못 돼서 그렇다. 지난 30년간 미국 가계소득은 정체 상태나 다름없지만 대학등록금은 많이 올랐다. 과거 30년 동안 4년제 주립대를 포함한 공립대가 평균 3.3배, 4년제 사립대는 약 2.5배 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라도 되면 빚을 갚을 수 있겠지만 취업 상황 역시 좋지 않다. 뉴욕연방준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22∼27세의 미국의 대졸자 실업률은 6%다. 얼핏 낮아 보이지만 보고서만 자세히 뜯어봐도 그 수치가 허수(虛數)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우선 시간제노동자를 말하는 ‘불완전 고용률’에 포함되는 해당 연령대의 대졸자가 2001년 34%였는데 2012년에는 44%로 껑충 뛴다. 그만큼 임시직에 취업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임시직에는 대학졸업장이 전혀 필요 없는 바텐더나 소매업 점원 같은 저임금의 허드렛일이 포함된다. 요즘 미국에서 일의 성격이나 보수 면에서 대졸자들에게 합당한 일자리가 급격히 씨가 말라가고 있다는 소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반영한다. 그나마 일자리를 찾다가 포기하고 구직을 완전히 단념한 사람들의 수치는 불완전 고용률에 잡히지도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청년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말도 옛날 일이 되었다. 애리조나대가 전미재무교육단(NEFE)과 함께 실시한 연구조사를 보면 대학 졸업 후 2년이 지난 대졸자의 절반이 아직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규직이라 해도 보수가 쥐꼬리만 해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있었다. 결혼과 연애를 포기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