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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수능 마친 수험생들에게 이 영화를 권합니다

입력 | 2014-11-20 03:00:00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내가 속한 기자 집단에선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기자 후배일수록 해외출장을 잘 보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불만 없이 일 잘하던 후배가 해외출장만 다녀오면 “저 이제 새로운 미래를 위해 회사 그만두겠습니다”라며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평소 선배들로부터 “띄어쓰기 틀렸다” “큰따옴표가 아니라 작은따옴표를 써야 한다”며 사사건건 혼나고 시비 걸리면서 기사 한 줄, 단어 하나라도 더 정확하게 쓰려고 안간힘을 쓰던 후배들이 어느 날 광활한 그랜드캐니언과 몽골의 대평원을 보게 되면 ‘아, 글자 하나 안 틀리려고 아등바등하며 사는 나의 삶이야말로 얼마나 작고 무가치하단 말인가’라는 깨달음이 절로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회사를 떠난 후배가 잘되는 경우를 난 별로 못 봤다. 왜냐하면 머리 깎고 스님이 되거나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세상 어떤 직업을 갖든 우리의 하루하루는 근원적으로 1cm를 전진하기 위한 치열한, 아니 치졸한 싸움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미식축구 감독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에는 이런 명대사가 있지 않은가.

“우리 인생은 1인치(inch)의 게임이야. 풋볼도 마찬가지야. 인생이든 풋볼이든 실수할 여지는 너무 작아. 그래서 우리는 그 1인치를 따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거야. 한 번에 1인치씩. 한 번에 한 플레이씩. 그렇게 끝까지 가는 거야!”

1인치를 더 나아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우리의 속된 삶이야말로 종교만큼이나 성스럽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마찬가지다. 단 한 문제를 더 맞히기 위해 3년을 목숨 거는 존재가 수험생이다. “우리에게 내일의 행복이 있는 건 오늘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야(We can’t have the happiness of tomorrow without the pain of today)”라는 영화 ‘섀도우랜드’의 대사를 수험생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수능 치른 수험생들, 수고 많으셨다. 힐링이 필요한, 혹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는 수험생 여러분을 위해 명대사와 영화 몇 편 추천해드리고자 한다.

우선 영화 ‘인터스텔라’. 특히 ‘나 수능 치르다가 설사 나와 다 망쳤어’ 혹은 ‘답 밀려 썼어’라고 자책하는 수험생의 마음을 충분히 치유해줄 대사가 이 영화엔 나온다. 영화 속 어린 딸이 “‘머피’인 내 이름 탓인지 내겐 ‘머피의 법칙’처럼 안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푸념하자 아버지는 ‘머피의 법칙’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이런 멋진 말을 해준다. “그것(머피의 법칙)은, 일어날 일이라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란다.”

그렇다. 재수 없어 생기는 일은 수능에선 없다. 인생에도 없다. 사태의 시작과 끝은 모두 내 안에 있다. ‘인터스텔라’ 속 또 다른 명대사처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어쩌면 오늘의 절망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더욱 위대한 답을 찾게 만들 계기가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멸망을 맞을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별을 찾아 우주로 떠나며 남기는 대사 “인류는 지구에서 태어났지만, 그것이 지구에서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Mankind was born on earth. It was never meant to die here)”를 수험생들을 위한 경구로 바꿔보자면 “수험생은 수능을 꼭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능이 수험생의 전부는 아니다”로 재탄생하진 않을까(이 멋진 말을 ‘수험생은 수능 끝나도 논술 등 대학별 고사를 또 치르면서 두 번 죽어야 한다’는 후진 뜻으로 해석하는 자는 없겠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온 상위권 수험생들은 억울해하기도 한다. ‘물수능’ 탓에 단 한 문제 실수하면 2등급이 될지도 모른다는데, 자기보다 공부 안 한 친구들과 등급이 똑같아지면 이것이야말로 불평등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수험생들에겐 영화 ‘노예 12년’과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를 추천한다. ‘노예 12년’은 12년간 억울하게 노예로 사는 흑인의 이야기. ‘나보다 수백 배 복장 터지는 인생들이 지구상엔 참으로 많구나’ 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게 된다. 그럼 ‘트랜스포머4’를 추천하는 이유? 보다 보면 잠들지 않기도 힘들다. 열 받을 땐 눈 딱 감고 꿈나라로 가는 게 상책.

마지막으로, 애매한 문제를 내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킨 수능 일부 출제위원께 문제적 영화 ‘내 연애의 기억’을 추천한다.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강예원)가 우연히 순진한 남자(송새벽)를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뻔한 내용의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고 보다 보면 놀라운(아니 황당무계한) 반전과 마주하게 된다. 알고 봤더니 남자는 사람을 토막 내는 연쇄살인마였던 것. 헉.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즐거워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몰라 환장할 지경이 되는 전대미문의 이 묘한 경험을 선물해드린다. 왜냐고? 수능 문제가 그랬다고 하지 않은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