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경제부 기자
한 해 만에 경제가 89%, 25% 성장했으니 숫자만 봐선 세계 경제사(史)의 대표적 경제성장 사례로 꼽히는 ‘한강의 기적’이 초라해질 지경이다. 마법같이 보이는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비밀은 바로 GDP 통계의 개편이었다. 전자상거래, 이동통신업, 영화 등 각종 무형자산들을 GDP에 포함시키자 경제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통계는 어디까지나 숫자일 뿐이다. 숫자로 표현된 GDP가 커졌다고 삶의 질이 곧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지리아, 케냐 등 GDP가 늘어난 나라들은 통계 개편 전과 마찬가지로 빈곤층의 비율이 높고 전력공급 상황도 열악하다. 이렇다 보니 통계를 개편할 때마다 ‘착시 현상’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통계청은 네 차례에 걸쳐 언론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국민들의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고용보조지표를 ‘사실상 실업률’이나 ‘실질 실업률’로 표현하지 말아달라는 게 설명회의 요지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통계청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애초에 통계청이 이 지표를 내놓은 취지는 공식실업률 통계와 체감실업률 간의 간극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고용보조지표’란 명칭만 고집하며 극구 새 지표와 실업률 간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공식실업률 통계 뒤의 진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들의 구직난을 해결하기 위해 직속 청년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서자(庶子)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던 홍길동의 아버지처럼 새 지표를 만들고도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통계청의 태도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경제통계는 경제현실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 정책 수립에 기여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숫자와 용어에 집착하기보다 아픈 현실이라도 가감 없이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고용정책을 마련하는 쪽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태도다. ―세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