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에서 아름다운 백조로. 한때 선수생활을 관두려고 생각할 정도로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혹독한 수비훈련으로 팀의 공격을 떠받드는 선수로 발전한 도로공사의 문정원(오른쪽)이 2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전에서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대전|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같은 포지션인 니콜 영입 후 좁아진 입지
주위 만류로 선수생활 지속…서브 연마
KOVO컵서 44득점 6서브에이스 눈도장
선발 기회 잡으며 도로공사 핵심선수로
한때 선수생활을 그만둘까 생각했다. 아직 배구를 포기하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포지션에는 니콜이라는 큰 벽이 버티고 있었다. 니콜은 기량도 좋지만 성격과 인성도 좋아 구단이 계속 재계약했다. 차라리 실업배구에 가서 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도로공사 문정원의 처지였다.
● 희망이 없었던 시즌-배구 포기를 생각하다
서남원 감독이 부임하면서 처음 기회가 왔다. 2013 KOVO컵이었다. 실망스런 결과가 나왔다. 첫 경기에서 몇 차례 공격이 실패하자 저절로 몸이 움츠려 들었다. 연습 때 기량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 2012년 KOVO컵과 마찬가지로 1득점에 그쳤다. 도로공사는 예선 탈락했고 문정원의 2013∼2014시즌 희망도 사라졌다. 2경기에 출전해 4득점(3에이스)을 했다.
● 서브가 희망을 안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서브를 갈고 닦았다. 배구인생을 바꿔줄 서브였다. 2014 여름 KOVO컵이 왔다. 서남원 감독이 또 기회를 줬다. 이번에는 달랐다. 서브가 통했다. 상대 선수들이 쩔쩔맸다. 덩달아 공격도 됐다. 역시 배구는 자신감이었다. 44득점에 서브에이스를 6개나 했다. 팬들에게 문정원 이름을 알리는 계기였다.
2014∼2014 V리그를 앞두고 이번에는 서남원 감독이 고민에 빠졌다. KOVO컵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문정원의 활용방법을 찾았다. 문정원이 아무리 기량이 늘었다지만 미국 국가대표 출신의 니콜을 앞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왼손의 라이트 공격수 문정원에게 돌아갈 포지션이 없었다.
● 수비가 주전 자리를 선물하다
시즌을 앞두고 감독은 “서브 리시브를 하라”고 했다.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가장 쉬운 길은 수비였다. 팬과 선수들은 공격에 신경 쓰지만 감독은 수비 잘하는 선수를 더 좋아했다. 해외 전지훈련 때도 문정원은 오직 수비훈련에 매달렸다. 밤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코트를 뒹굴었다. 이번 시즌 초반 3경기에 원포인트 서버로 나갔다. 3개의 에이스를 기록했다.
8일 드디어 문정원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현대건설전을 앞두고 서남원 감독은 니콜을 레프트로 돌리며 문정원에게 선발출전의 기회를 줬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강한 서브로 상대를 헤집었다. 10득점을 했다. 수비가 되는 왼손 라이트 공격수. 게다가 서브에 장점이 있는 선수. 그런 선수에게 마침내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렸다. 10일 IBK전에서 9득점, 13일 흥국생명전에서 11득점을 했다.
노력하다보니 행운은 겹으로 왔다. FA영입 선수 이효희가 룸메이트가 됐다. 베테랑 세터는 문정원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줬다. 안방교육의 효과는 컸다. 이효희는 “같은 리시브라도 세터가 좋아하는 구질이 있다. 그런 리시브를 해야 세터가 좋아하고 올라가는 공도 좋아진다”며 패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격수는 세터가 만든다고 했다. 문정원은 선배의 도움으로 차츰 배구의 눈을 떴다. 17일 GS전에서 개인최다인 19득점에 4개의 에이스를 했다. 이제 문정원은 도로공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됐다. 서남원 감독은 “기대의 120%를 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역시 땀은 정직했다.
대전|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