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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구매 관리도 ‘과장 전결’… 비리 터지면 윗선은 “몰랐다”

입력 | 2014-11-21 03:00:00

[防産비리 뒤엔 구조적 허점]방사청 결재사안 전수분석 해보니




국회 출석한 신임 방사청장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장명진 신임 방위사업청장(차관급·오른쪽)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통영함 납품비리 의혹에 당시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었던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연루의혹이 제기되자 황 총장은 10월 국정감사에서 “원가 상정은 담당 팀에서 모두 결정한다. 나는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책임회피용 발언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 결과 방사청의 주요 의사결정은 실무선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

○ 방사청 업무 중 청장 결재 사항은 4.3%


통영함 비리처럼 각종 방산비리가 터질 때마다 방사청의 고위 공직자들은 면피성 답변을 내놓는 데 급급했다. 실제로 관련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고위직들이 방사청의 내부규정을 활용해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갔던 탓이다. 방사청 업무의 70%가량이 과장급 차원에서 최종 결재가 이뤄지다 보니 “내 소관이 아니다” “나는 몰랐다”는 고위직들의 변명이 여론의 지탄은 받을지언정 법적 책임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이 20일 방위사업청과 그 소속 기관의 위임전결 규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방사청의 업무 3001건 중 청장 결재 사항은 129건(4.3%)에 불과했다. 차장 결재 사항도 114건(3.8%)에 그친 반면 3, 4급 과장급이 전결하는 사항은 2022건(67.4%)에 달했다.

전결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해 전결권자들이 결재를 회피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방사청의 A 전 본부장은 현직 시절 실무진이 결재서류를 올리면 차일피일 결재를 미루다가 실무진에 되돌려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 다음에 “정식 결재서류가 아닌 참고용 보고서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이를 오랫동안 검토해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서야 사인을 했다. 그러다 보니 사업 진행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그는 “중요한 업무가 많이 위임돼 전결을 하다 보니 차후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고백했다.

방사청은 “무기 구매 같은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실무진에 대거 권한을 위임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 “생색내기 좋은 업무는 청장 차장의 결재 필요”

문제는 방사청의 핵심 업무 결재라인에서조차 청장 차장 본부장 등 고위직들이 배제됐다는 점이다. 방사청의 한 직원은 “귀찮고 해봐야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업무는 아래 직원들의 전결이 가능하도록 돼 있고, 생색내기 좋은 업무는 청장 차장의 결재를 필요로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일례로 방사청의 중요 업무 중 하나인 무기 구매의 경우 관리, 업무협조, 국제협력은 모두 과장 전결 사항이다. 무기구매 과정에서 중요 업무로 분류된 부분은 비록 국장 전결로 돼 있지만 일반 업무는 과장 전결로 이뤄지고 있다. 방사청 획득기획국의 핵심기술 부문도 마찬가지다. 핵심기술의 소요 검토, 예산 편성안 검토, 연구개발 등도 과장의 전권 사항이다.

방산비리 척결을 내건 장명진 신임 방사청장 체제가 출범했지만 정작 부패방지대책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조치하는 것은 국장 전결 사항이다. 그나마 부패방지대책의 추진 실적 평가, 기동감찰반 운영, 내부공익신고센터 운영 등 핵심적인 부분은 과장이 전권을 갖고 있다. 청장은 아예 결재라인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반면 청장이나 차장 등 고위 공직자의 전결 사항은 해외출장, 홍보, 방위산업협회 관리와 같은 비핵심 업무에 집중돼 있었다. 차장 전결 사항인 ‘에너지 절약계획 수립’은 오히려 과장급이 맡아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문제가 됐던 통영함의 경우 핵심인 관급장비 협상 및 가계약 의뢰는 팀장을 전결권자로 했다. 청장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기종 결정 안건이 상정될 때에야 겨우 해당 사업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방산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무기 획득 사업의 결재에는 청장과 차장이 반드시 사인을 하도록 해서 본인이 물러나더라도 법적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의원은 “잘못된 내부규정 설계로 인해 중요 사업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고위직들이 오히려 법적 책임을 피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방사청 업무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결재자를 정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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