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2. 모선 로제타호에서 분리된 탐사선 ‘필래’가 역사상 처음으로 혜성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지만 햇빛이 들지 않는 곳으로 내려앉는 바람에 작동이 중단됐다.
필래가 작동을 멈췄다는 소식이 들리자 관심이 확 줄어든 느낌이다. ‘실패’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일까. 사실 혜성에 정확히 착륙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지만, 우주 탐사는 원래 처음에는 실패로 도배를 하기 마련이다.
인터스텔라처럼 과학 비중이 높은 SF 영화는 미국에서도 흥행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병원에서 연애하고 법정에서 연애하듯’ 미국도 우주에서 가족 찾는 것이다. 배트맨 시리즈와 인셉션의 성공으로 편하게 갈 수 있었던 놀런 감독은 그래도 실패 위험이 큰 영화를 선택했다. 비록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꽤 좋은 작품을 남기긴 했다. 3차원(3D) 블랙홀이나 5D 공간의 모습은 꽤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연구개발의 유행어 중 하나가 ‘실패해도 좋다’가 된 건 벌써 20년이 넘는다. 그런데 여전히 남들 하는 연구, 안정적인 연구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얼마 전 만난 과학자는 한마디로 정리해줬다. “한 번 실패하면 다음에 연구비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벤처 창업에 도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실패하면 끝”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달 톰슨로이터라는 외국 회사가 KAIST의 유룡 교수를 노벨화학상 후보로 지명해 화제가 됐다. 유 교수와 인터뷰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노벨상 후보까지 오르게 한 연구를 하다가 처음엔 성과가 안 나와 평가에서 ‘D’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나중에 놀랄 만한 결과를 내긴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해피엔드를 맞는 건 아니다. 새로운 연구에 도전했다가 ‘당연히’ 실패하고, 연구비가 자꾸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그런 모습을 보면 누가 실패할 만한 연구에 도전하고 싶을까.
몇 년 전 우리나라는 나로호 발사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 러시아 발사체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다들 ‘두 번 실패’하고 ‘숱하게 연기’한 것만 기억했다. 나로호 발사는 이미 모든 기술이 완성된 비행기를 서울에서 뉴욕까지 모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성공했던 마지막 한 번까지 모두 세 번 쏘면서 발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하우를 익힌 경험은 대중에게 잘 와 닿지 않았다.
인터스텔라에서 나온 말처럼 “늘 그랬듯이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실패가 먼저다.
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dre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