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지금과 비슷한 골격을 갖게 된 건 약 20만 년 전입니다. 하지만 현재 인류처럼 높은 지능을 갖게 된 건 언제인지 모릅니다. 이 조그마한 석영 입자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센터. 최정헌 환경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이 컴컴한 분석실에 놓인 장비를 점검하며 이렇게 말했다.
분석실은 한 줄기 빛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조차 회전식 원통으로 설계한 암실이다. 그는 장비를 가리키며 “루미네선스 자동분석기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으로 석영 입자에서 과거의 시간을 알아낸다”면서 “햇빛에도 에너지가 들어 있는 만큼 시료가 햇빛에 노출되면 측정값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진이 아프리카 말라위 카롱가 지역에서 후기석기시대 유물 주변의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최 연구원이 인류 지능 기원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작년 초다. 고고학자인 제시카 톰프슨 호주 퀸즐랜드대 사회과학교실 교수팀이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SOS를 친 게 계기가 됐다.
톰프슨 교수팀은 2009년부터 아프리카 말라위 카롱가 지역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해 왔다. 이 지역은 ‘길 가다가 발에 걸리는 게 석기시대 유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석기시대 유물이 풍부하다. 톰프슨 교수팀은 유물과 동일한 깊이에 있는 토양을 채취해 여기서 연대를 추정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이 시료를 받아 루미네슨스 자동분석기로 석영 입자에 흡수된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을 분석해 연대를 측정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동물의 뼈나 화석에서 연대를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이다. 방사성 물질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반감기를 이용해 뼈나 화석에 남아 있는 방사성탄소의 양으로 나이를 알아내는 것이다. 다른 방법과 비교해 오차가 작고 분석 시간도 짧다. 하지만 흙이나 돌을 분석할 때는 방사성탄소가 거의 들어 있지 않아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흙에 많이 들어 있는 석영을 택했다. 자연 상태의 석영 입자는 내부에 드문드문 결함(구멍)이 있는 구조를 띤다. 이런 구멍에는 땅속 방사성동위원소가 내뿜는 에너지가 전자로 바뀌어 흡수돼 들어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쌓인다. 석영 입자 속 구멍에 쌓인 전자를 빛 입자로 바꿔 그 양을 측정하면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 기술은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독보적이다. 톰프슨 교수팀이 공동 연구 요청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루미네선스 자동분석기 4대는 각자 특성이 달라서 거의 모든 입자를 분석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분석 결과 인류의 지능은 약 3만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연중 환경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크게 네 지역에서 동위원소가 다르게 나타날 정도로 납은 지역차가 크다”며 “2012년에는 ‘에밀레종’으로 널리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재료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채굴한 것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오창=전승민 동아사이언스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