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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한기흥]MB때 풀릴 뻔했던 위안부 해법

입력 | 2014-11-22 03:00:00


한기흥 논설위원

지금 한일관계의 가장 큰 숙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실은 이명박(MB) 정부 말에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마지막 결단을 내렸더라면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준 정치지도자로 남을 뻔했다. 아쉬움으로 남은 당시 비밀 협상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의 해법 찾기에 참고가 될 것이다.

2012년 10월 말.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사이토 쓰요시 일본 관방 부장관과 이동관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마주 앉았다. 그해 외교 채널을 통해 진행된 양국의 위안부 협상이 벽에 부딪치자 사이토 측에선 MB의 의중을 잘 알고 직접 통할 수 있는 측근과의 협상을 원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주선해 이 전 수석이 나섰다.

2011년 12월 교토 정상회담에서 MB가 노다에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한 뒤 양국은 해법에 골몰했다. 2012년 3월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사무차관이 방한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조치의 비용’을 제공하는 안을 꺼냈으나 한국이 거부하자 4월 사이토 부장관이 다시 서울에 와 좀 더 진전된 안을 내놓았다. 이를 토대로 천영우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신각수 주일 대사 라인에서 일본과 교섭했으나 좀처럼 돌파구가 열리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만난 사이토와 이 전 수석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의견을 모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정부가 각의의 결정으로 국고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인당 300만 엔을 사죄금으로 지급한다 △일본 총리가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사죄 편지를 쓴다 △주한 일본대사가 할머니들을 만나 총리의 편지를 낭독하고 사죄금을 전달한다 △제3차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동 연구한다.

일본의 배상금엔 잘못을 인정하는 의미가 담기도록 영어로는 atonement(속죄금), 일본어로는 쓰구나이킨(償い金), 우리말로는 사죄금이라는 표현을 각각 쓰기로 했다. 일본이 각의 결정으로 예산에서 배상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공식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두 사람은 양국 정상이 이 안을 수용하면 특별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그러나 노다가 막판에 망설이다가 그해 12월 중의원 해산으로 민주당 정권이 자민당으로 넘어갔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하면서 MB-노다 정부의 협상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위안부 문제의 해법은 할머니들이 원하는 대로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최상이다. 일본 헌법상 국권의 최고기관인 의회에서 사죄 결의를 하고 법에 따라 배상해야 마땅하다. 최소한 각의의 결의와 총리의 공식 사과, 정부 차원의 배상이 있어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듯하다.

‘사이토-이동관 안’은 현실적으로 한일이 수용할 만한 차상의 안이었다. 현재 양국 간에 논의되는 해법이 이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깝다. 노다보다 아베가 더 수구적인 탓이다. 양국 정권이 모두 바뀌었지만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MB-노다 때 멈춘 곳에서 더 나아간 협의를 해야 할머니들도 수긍할 것이다. 외교 채널의 공식 협상이 어렵다면 특사를 통한 막후교섭과 한일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라는 해법도 검토했으면 한다. 결국엔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결단해야 풀 수 있는 사안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