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말소된 주민등록 ‘아버지’
―이광석(1935∼)
등 굽은 세상 더 탓하지 말게
살다 보면 굽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아버지의 등 굽은 허리 너도 벌써 보았겠지
쇠주 한 잔 품고 돌아온 어느 겨울 저녁
축 처진 어깨 너머 꽁초처럼 찍어 밟던
단 한 줄의 일기…….
“외롭다 힘들다”
6.25 군번도 못 찾은 전사통지서 60년 껴안고 울음 운
내 아버지의 갓데미산*은 이미 전설이다
이제 더는 외롭고 힘든 세상 나무라지 말게
팔십 고개에도 편한 잠 어디 있으랴
불안 하나 못 잠그는 열쇠꾸러미, 나무껍질처럼
까칠한 지갑, 무슨 약인지도 모를 수북한 약봉지, 한낮에도
기웃거리는 치매 증후군, 잃어버린 첫사랑 같은
녹슨 기억들, 혹은 우울증
손주들 재롱도 너무 커버려 휴대전화 문자도 안 잡히는구나
마누라 잔소리 눈치 조금씩 여위어 가는
얼마 안 남은 착한 자유를 위해
아무도 호명해 주지 않는 말소된 주민등록 같은
이 시대의 미아 ‘우리 아버지’
당신의 마지막 아름다운 상처
오늘밤 동네 포장마차 빈 잔 가득 안아드리고 싶다
: : 갓데미산 : :
경남 함안 여항산
아버지란 자리가 다 그렇구나…. 화자는 이제 ‘전설’이 된, 유독 모진 역사의 직격탄을 맞은 자신의 아버지 세대와 그 상흔을 간직한 채 ‘더는 외롭고 힘든 세상을 나무라지’ 않게 되도록 연세를 잡순 제 세대의 현재 사는 모습을 돌아보며, 가부장 의식은 남아 있고 아버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시대에 ‘아무도 호명해 주지 않는 말소된 주민등록 같은’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세대를 넘어 깊은 연민과 연대감을 전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