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는 과학과 모험 못지않게 가족애와 인간의 회한, 희망을 강조한다. 동아일보DB
남자주인공 쿠퍼는 낡은 집을 돌아보지만 딸 머피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관 스피커가 가슴 먹먹한 선율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심장에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멜로디, 꼭 말러 교향곡 10번 마지막 악장 같군!”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심장 이상으로 삶의 마지막을 감지하는 가운데 1910년 교향곡 10번의 스케치에 들어갔습니다. 이 곡의 끝악장 앞부분에서는 비애로 가득한 플루트 솔로의 단조 동기(motif)가 뚜렷한 인상을 줍니다. 이 동기는 악장 뒷부분에 장조로 바뀌어 전체 현악기의 세찬 합주로 다시 등장합니다. 앞쪽 플루트 연주가 삶의 마지막에 선 사람의 회한과 같다면, 뒤쪽 현악 연주는 거센 감정의 파도 속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일말의 희망과 동경을 보내는 듯한 느낌입니다.
영화음악가 겸 지휘자 존 모체리는 예전에 “말러의 음악이 볼프강 코른골트를 비롯한 후배 유대계 음악가들에게 이어졌고, 이들이 나치를 피해 할리우드로 이주하면서 영화음악계가 말러의 음악어법을 이어받게 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어느 정도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후배 음악가들은 선배들이 남겨놓은 음악적 ‘의미 유전자’ 안에서 움직이기 마련이고, 태양 아래 새로운 착안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해의 마지막 달이 다가오는군요. 이때 말러 교향곡 10번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누구나 한 해를 보내는 감상에는 회한과 희망이 교차되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후회할 점이 많더라도 결국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하겠죠.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