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 <4> 답답한 정치, 제대로 바꾸자 (上) 19대 국회의 반성문
국민들의 뜻에 의해 ‘민의의 전당’에 입성한 300명의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2년 7개월을 보낸 19대 국회는 어느새 탁류(濁流)로 변질해 버린 지 오래고 정치인들 스스로의 입에서는 “우리는 3류”라는 자조의 소리가 나온다. 올 2월 1948년 제헌국회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여야 국회의원 282명이 국회 본관 앞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야가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국민의 뜻에 의해 여의도에 입성한 선량(選良)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말이다.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2012년 5월 30일 이후 2년 6개월간 헌법기관으로서 정치생활을 했지만 어느새 정치 탁류(濁流)에 휩쓸려 허덕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6개월 넘게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사코 국민의 뜻에 역주행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민의의 전당은 우리에게는 사치라는 체념도 나온다.
○ 그들은 ‘선량’인가…‘악화가 양화 구축’ 비판론
19대 국회는 수치로만 보면 확실히 물갈이됐다. 18대 현역 의원 62%가 교체됐고, 초선 의원은 전체 의석수(300명)의 절반에 육박한 148명에 달했다.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충원된 초선까지 합치면 156명이다.
문제는 새 피가 수혈됐어도 국회가 할 일은 하는 생산적 국회로 변했다는 평가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쟁’으로 상징되는 기존 정치 질서가 여전히 국회를 지배하면서 ‘타협과 대화’의 정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해산하라’는 여론까지 비등하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천 당시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양질의 인사들보다는 당선 가능성만 따져 스펙 좋은 인물들을 주로 발탁시켰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도 비슷하게 진단했다. 그는 “석수장이가 눈깜작이부터 배운다는 속담이 있듯이 의원들이 당 실력자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방법 등 3류 정치의 처세술부터 배우고 있다”면서 “요즘 초선 의원들을 보면 점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고의 선량이 국회에 안 들어오는 이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수준 낮은 정치 문화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류 인사들이 정치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정치가 진흙탕이어서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고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봐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 ‘정치력 부족’ 다수 지적…차기 총선에 관심 집중
한 여당 의원은 아예 “의원들이 직위를 즐기거나 이용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남권 재선인 그는 “공직자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권력의 사유화인데 의원이라는 직위를 개인적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직무유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일갈했다.
야당 핵심 당직자도 “출세와 명예를 위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못마땅해했다.
의원 대다수가 사실상 2016년 총선 체제로 들어가면서 중앙정치인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의원들이 자신의 열정을 다음 선거를 위해 쏟아붓고 있다”며 “결국 의정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정치인으로서 ‘깜냥’(능력)이 안 되는 의원들이 있다”고 했다.
중도 성향의 한 야당 초선 의원도 “능력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계파 몫으로 공천 받으려고 목소리만 크게 내는 강경파 의원들이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호남권의 야당 재선 의원은 “경험은 부족하지만 계파에 잘 보여서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분석했다.
원내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여당 의원도 “의원들이 중앙정치를 해야 하는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으로 지역 주민 민원들만 해결하고 앉아 있다”면서 “자기 선거에 악영향을 줄 만한 일에는 아예 끼어들지도 않는다”고 했다.
의원들을 평가하는 구체적 수치까지도 언급됐다. 여당 초선 의원은 “새누리당 현역 의원 158명 가운데 30∼40%는 정치인으로서 옷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정치인으로서 미흡하고 정무적 감각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인이 의사표현을 안 하면 공무원과 같은 것이다. 정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여당 초선 의원도 “현역 의원 중 70% 이상이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에 대한 가치 등이 없는 것 같다”면서 “지역구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꾸 극단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인턴’ 정치인…결국 예비 정치훈련 필요
‘인턴 정치인’ 등의 적나라한 표현도 나왔다.
여당의 4선 중진 의원은 “선거 때마다 대폭 물갈이를 해도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의원 생활 4년을 하다 이제 정치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다시 바뀌면서 결국 ‘인턴 국회’가 돼버린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회의 경쟁력 저하로 나타난다. 새누리당의 한 최고위원은 “계속 물갈이 형태로 공천이 가다 보니까 행정부에 놀아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행정부의 한 수 아래로 되면서 정책과 관련해 사실상 컨트롤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은 정치인 훈련의 강화라는 지적이 많다.
야당 원내대표를 지낸 한 중진 의원은 “국정에는 연습이 없듯이 정치에도 연습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정당은 (정치인 양성학교인) 일본의 마쓰시타(松下)정경숙처럼 정치인을 배출하는 아카데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1년 전에 출마 결심을 하고 정당에서 홍보와 정책 분야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야당 재선 의원은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라며 “의원들이나 상대 당, 국민과 소통을 해야 국가를 위해 진짜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성호 sungho@donga.com·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