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경제 시대 박정희 대통령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경제엘리트들이 서강학파다. 1970년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한강의 기적’을 주도한 경제관료 가운데 서강대 교수 출신이 특히 많았다. 재벌 우선, 수출지상주의, 선(先)성장 후(後)분배 등 박정희 경제정책의 큰 틀을 짠 성장주의자 서강학파 1세대 고(故) 남덕우 전 총리와 이승윤 김만제 전 부총리가 ‘서강학파 트로이카’로 불렸다.
▷박근혜 정권 창출에 기여한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은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과 함께 서강학파 2세대다. 3세대엔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생들이 계보를 이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경환 국토연구원장, 남성일 서강대 교수와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등이 꼽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서강학파의 퇴조세는 뚜렷해졌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한 노무현 정부에서는 서강학파의 종언(終焉)이라는 말도 나왔다.
▷서강대 상경계 출신이 금융회사에 진출하면서 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동문 중심으로 ‘여의도 서강학파’라는 말이 생겼다. 2007년 발족한 서강금융인회(서금회)엔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회사 팀장급 이상 30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폭탄주 건배사는 ‘서! 서! 서!’. 서강대인들이 발딱 서자는 뜻이란다. 박정희 대통령 때 나라 장래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서강학파와는 차원이 다른 동문 모임이다.
▷이순우 회장이 연임될 듯하던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서금회 출신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경영 76학번)이 경합하고, 4개월째 공석이던 대우증권 사장에 홍성국 대우증권 부사장(정치외교 82)이 내정됐다. 홍기택 산업금융지주 회장(경제 71),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수학 67)이 서강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자리에 앉았을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고려대 출신 ‘4대 천왕’이 뒷말을 낳았다. 서금회 출신들로선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밀리는 처지에 단결 좀 했기로서니 대수냐는 항변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시대에도 학맥과 연줄로 권력에 줄을 대 호가호위하는 풍토는 후진적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