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④송원아트 ‘모바일 홈 프로젝트’와 비앙에트르 ‘바닐라 수플레’
상자로 만든 ‘슈나우저와 노인이 사는 집’(위). 나무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비앙에트르의 수플레(아래) 속처럼, 따끈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모바일 홈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20팀은 행복한 삶의 조건 중 하나인 주거(住居)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
건축학도 출신 정인교 작가는 전시실 한 귀퉁이에 폐품 종이상자로 2.5m² 남짓 면적의 ‘집’을 지었다. 토요일 아침 빨래방 창가에 선 정 씨 앞으로 폐지 쌓인 손수레를 끄는 노인과 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편의점 앞 상자 더미로 후다닥 달려간 개가 노인을 돌아보며 짖었다. 힘겹게 당도한 노인은 상자를 줍기 전 쪼그려 앉아 개를 꼭 안고 어루만졌다. 작가는 “듬성듬성 털 빠진 개의 피부병 흔적이 내 눈에만 보이는 듯해 부끄러웠다”고 했다. 두툼히 쌓아 붙인 박스 집에 나무 문짝 두 개를 달았다. 하나는 노인의 문, 또 하나는 개를 위한 발치께 문이다.
지상 프렌치레스토랑으로 올라왔다. 언뜻 지하 전시실 현재 풍경과 유리된 분위기다. 건축가 조민석 씨 설계로 2012년 재건축한 이곳에 앉으면 북촌 골목 한쪽 모서리 풍경이 속속들이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산자락 헐고 앉은 호텔 식당에 흔히 풍기는 천박한 고고함의 낌새는 없다.
박민재 셰프(47)는 “프랑스 요리 진가는 디저트에서 결판난다”며 대표 메뉴로 수플레를 냈다. 한동안 뜸했던 단골이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항암치료 내내 이 맛 떠올리면서 버텼다”고 했던 음식이다.
조리법을 글로 풀면 특별할 것 없다. 우유, 달걀노른자, 설탕, 바닐라 빈을 갈아 만든 크림에 흰자 휘저은 머랭을 섞고 180∼200도로 10∼15분간 오븐에 굽는다. 외관부터 따끈하고 포근하다. 굴곡 없이 은은한 단맛이다. 거북하게 질척거리지도, 허무하게 픽 꺼지지도 않는다. 입 안을 고루 감싸 어루만지다 스르르 미끄러져 사라진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출신으로 스타 요리사 조엘 로뷔숑의 주방에서 실습한 박 셰프는 2000년대 초중반 서울 강남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곧 사업에 실패해 거리에 나앉을 궁지에 몰렸다. 그는 “기술에 도취해 요리하는 까닭과 행복을 잊은 오만함 탓이었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