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하는 진짜 복지이야기]
돈이 아쉬운 노숙인들의 명의를 이용해 일명 대포폰을 만들려는 범죄자들이 있다. 동아일보DB
백주원 변호사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 씨는 살고 있는 고시원의 월세가 올라 급전이 필요했다. 고시원에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휴대전화를 개설하면 이를 담보로 소액대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통장 사본, 신분증 사본,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신용카드정보 등을 그에게 내주었다. 그 후 지인과의 연락이 갑자기 두절됐다. 그러던 김 씨는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휴대전화 단말기대금, 사용요금, 소액결제대금 명목으로 약 570만 원이 부과된 것이다.
23일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 등 취약계층만 노려 무려 6000여 대의 휴대전화를 불법 개통한 뒤 이를 팔아치운 사기 조직이 적발된 것과 일맥상통하는 사건이다. 이번에 적발된 사기조직은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않은 ‘무회선자’의 정보만 뽑아내 범행을 저질렀다. 기존에 개통한 사람은 몰래 새 휴대전화를 만들어도 이 사실이 자동 통보되기 때문에 애초에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만 범행 타깃으로 잡은 것이다. 한마디로 저소득 취약 계층만 노린 악질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타깃이 된 피해자들도 대부분 지방 소재 병원이나 요양원, 양로원 등에 거주하는 사회 취약 계층이었다. 피해자들은 사용하지도 않은 휴대전화 단말기 요금과 통신요금 ‘폭탄’을 맞는 등 경제적 정신적 피해에 시달린다. 2008∼2012년 이동통신 3사에서 발생한 명의 도용으로 인한 피해액은 13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
우선 명의 도용은 명의 대여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통신회사의 사용료 청구를 거부할 수 있다. 명의 대여는 자신의 명의를 제3자가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지만, 명의 도용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제3자가 맘대로 자신의 명의를 사용한 것에 대해 사용료를 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도용당했다 해도 무조건 통신회사의 사용료 청구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적으로 통신사가 통상 거래에서 요구되는 정도로 본인 확인 의무를 다했는지가 중요하다.
앞서 소개한 김 씨의 사례가 그렇다. 김 씨는 휴대전화 개설 목적으로 자료를 준 것이 아닌 만큼 명의 도용을 당한 것이라 휴대전화 단말기 요금 및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통신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기각을 당했다. 법원이 김 씨가 외부 사람이 알기 어려운 인적 정보 자료와 신용카드 정보 등을 전달한 이상, 통신사로서는 그것이 작성자인 김 씨의 위임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적발된 사기 사건처럼 전혀 모르는 관계인 제3자가 신분증을 위·변조하거나 허위 서류를 제출한 경우에는 통신사가 본인 확인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볼 확률이 상당히 있어 통신회사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하여 단말기 요금과 사용료 납부를 거부할 수 있다.
○ 이동전화 가입제한 서비스로 피해 예방
통신사마다 명의 도용 피해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피해 구제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휴대전화 명의 도용 사건은 사후적인 피해 구제보다 미리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운영하는 엠세이퍼(www.msafer.or.kr)의 ‘이동전화 가입제한 서비스’를 적극 추천한다.
이 서비스는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을 한 후 자신의 이동전화 번호와 e메일을 입력하면 새 이동전화에 가입할 경우 휴대전화 SMS 메시지와 e메일로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치 신용카드 사용 알림 서비스처럼 신용카드 사용 건이 휴대전화 메시지로 뜨는 식이다. 만약 나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내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신규로 가입했다는 통지가 오면 바로 이동통신사로 연락해서 해지 신청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가 없어도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이 경우 e메일로 통보받는다.
일반인도 필요하지만 특히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기가 힘든 장애인이나 어르신이 있다면 주위에서 이 서비스를 대신 가입시켜 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