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기수 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떨어진 한 사립 초등학교에 아들의 입학원서를 낸 것은 지지난 주 토요일의 일이었다. 그에겐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삼 년 전부터 아내 없이 혼자 키운 아들이었다.
아내 없이 혼자 키웠다고는 하지만 기수 씨는 아들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파트를 전문으로 짓는 건설회사의 계약직 배관공이었던 그는,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끼지 않고 꼬박꼬박 일곱 시까지 집에 도착했다. 그는 늘 아들과 함께 샤워를 했는데, 그때마다 샴푸 거품으로 아이 얼굴에 수염을 만들어주거나, 함께 하수구를 향해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는 아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유치원 때부터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아빠, 사랑에 실패하는 거 봤지?
기수 씨는 자신이 사립 초등학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학기 등록금이 이백만 원 조금 넘는 액수라는 것과,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수영장이 있고, 급식은 유기농으로만 제공된다는 것, 그것이 기수 씨가 알아본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입학원서 접수와 동시에 이루어졌던 교감과의 일대일 면담 후, 그는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산에 넣지 않았던 통학버스비와 특별활동비, 4학년 때부터 방학마다 가는 어학연수 비용과 다른 초등학교에선 입지 않는 교복의 가격 같은 것들. 아들한텐 이미 넌 사립 초등학교에 가게 될 거야, 우리 아파트 단지에선 아마 너만 그 학교에 다니게 될걸, 그렇게 말해놓았는데… 기수 씨는 자신의 말을 주워 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의 능력을 벗어나는 비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아들에겐 차마 내색할 수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입학 추첨날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경쟁률은 4 대 1이라고 했다. 아이가 직접 추첨함에서 공을 뽑고, 거기에 적힌 숫자에 따라 바로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는 형식이었다. 교장의 인사말이 끝난 후 바로 추첨이 시작되었다. 합격 번호를 뽑은 아이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있었는가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은 불합격 번호를 뽑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기수 씨의 아들은 ‘74’번이 적힌 공을 뽑았다. 불합격 번호가 적힌 공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수 씨와 그의 아들은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과 기수 씨 모두 시무룩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눈이 곧 흩날릴 듯 꾸물꾸물한 날씨였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