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 <4>손주 걱정에 아플 수도 없는 김양순 할머니
24일 김양순 할머니가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는 ‘위기가정 지원사업’으로 밀린 월세를 해결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는 자식에게도, 손자 손녀에게도 말할 수 없어 속이 타들어 간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건강하게 해 달라고…나는 내일 죽어도 상관없지만 애들 고생 안 시키려면….”
24일 만난 그는 주름으로 쪼글쪼글한 손으로 무릎과 다리를 계속 어루만졌다. 젊어서부터 농사와 허드렛일에 쉴 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이제는 걸을 때마다 시린 무릎이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김 할머니만 바라보고 있는 손자(14)와 손녀(12)가 있어서다.
전남 순천에서 농사지으며 살던 할머니는 10년 전 갑자기 서울로 올라왔다. “일부자 인생”이라고 했다. 며느리가 갑자기 집을 나간 통에 어린 손주들 돌볼 사람이 없어서였다. 아들도 아내를 찾으러 다니느라 경황이 없었다. 할머니는 “냉장고가 없어 아이들 먹일 소시지가 상할까 밤새 창틀에 뒀다 다음 날 부쳐 먹이는 식이었다”며 “그때 얘긴 꺼내기도 싫다”고 손을 내저었다.
아들은 어쩌다 집에 들어와 몇만 원 내놓고 다시 나갔다. 인근 경기 지역에서 막노동을 한다고만 들었다. 할머니는 6년 전 양천구에서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0만 원에 방 2칸짜리 집을 얻었지만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 할머니네 수입은 노령연금 20만 원에 복지관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 일을 도우며 받는 20만 원이 전부다. 3인 가정의 최저생계비(132만9118원)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수입이지만 간간이 왕래하는 아들과 딸의 부양능력이 인정돼 여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수 없었다.
아침마다 손자 손녀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나면 복지관에 갔다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지와 빈 병을 줍는 게 할머니의 생업이다. 현관문이 도로와 바로 이어진 탓에 폐지 놓을 곳이 없어 그날그날 고물상에 갖다 주고 1000원, 운 좋은 날은 2000원을 번다. 지난주엔 감기몸살에 걸렸지만 병원비가 아까워 “그냥 이틀간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 급한 불 껐지만…
“집주인만 보면 미안해 죽겠어. 집주인도 ‘할머니네가 가장 걸린다’고 걱정하지.”
할머니 가정을 돌보는 신정종합사회복지관 성범룡 대리는 “할머니는 아파도 티도 안 내고 없는 살림에 애들 학원도 보낼 정도로 손자 손녀 사랑이 크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어릴 땐 남이 준 옷도 잘 입던 애들이 크니까 이젠 남의 옷 안 입는다. 아이고…”라 하다가도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부모 없이 멍청한 할머니랑 사니 얼마나 깝깝할꼬”라며 손자 손녀 얘기를 이어갔다. “애들 클 때 대비한 저금이오? 당장 이번 겨울 날 돈도 없는데….”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