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돌려주세요]⑩광주신세계 ‘직장 어린이집’
아이들이 광주신세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광주신세계의 직장 어린이집은 직원들 근무시간에 맞춰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운영한다. 광주신세계 제공
○ 오후 9시 반까지 운영하는 어린이집
광주신세계는 2011년 3월 서구 무진대로 본점에 264m² 규모의 ‘신세계 어린이집’을 마련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전체 직원의 68%에 이르는 여직원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한 해 2억5000만 원에 이르는 운영비용도 회사가 전액 지원하고 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어린이집 시설은 전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만들었고, 급식도 친환경 재료만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세계 어린이집은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13시간 동안이나 운영한다. 또 월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내내 이용할 수 있다. 기타 민간 어린이집보다 교사들을 많이 배치해 교사 1명이 아동 4명을 돌보도록 했다. 올해에는 이런 점들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가 평가한 우수 어린이집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 씨는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출퇴근 시간을 맞춰주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사내 어린이집 덕분에 모든 고민이 말끔히 풀렸다”고 말했다.
광주신세계 직원이 아침에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있다. 광주신세계 제공
광주신세계는 또 2010년부터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만들기’를 목표로 다양한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출산한 여직원들이 24개월까지 본인 희망대로 탄력적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희망육아휴직제’가 대표적이다. 보통 다른 직장의 ‘워킹맘’들이 1년 정도만 육아휴직을 쓰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올 한 해에도 여직원 3명이 14∼23개월씩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광주신세계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5월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열린 남녀고용평등 강조 주간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주신세계 관계자는 “법이 정한 모성 보호 기준보다 혜택과 범위를 늘려 지원하자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며 “여직원들이 많은 다른 기업에서도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리프레시 휴가
광주신세계는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직원들의 재충전을 돕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감정 노동자란 고객의 감정을 관리하는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형태로 백화점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백화점 근로자는 감정 노동 특성상 스트레스가 많다.
광주신세계는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연중 5일 이상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리프레시 휴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임직원들의 가족을 위해 지역 내 주요 사찰에서 숙박하며 체험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필라테스와 요가 강사를 초청해 직원들이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정시퇴근-휴직, 눈치 안 보는 문화 만들어”▼
일-가정 양립 주도 유신열 대표
유신열 광주신세계 대표이사(51·사진)는 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광주신세계의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직장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통업 종사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 직원들도 평일엔 늦게 퇴근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어쩔 수 없이 근무해야 하는 여건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특히 백화점은 근무여건이 여타 기업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 직장과 차별화된 제도를 만들어야 직원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도입 과정에서 반대도 심했을 것 같다.
“제도의 취지 자체가 설득력이 있었고,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삶의 질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는 전혀 없었다. 다만 ‘눈치’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하거나 휴직하더라도 눈치를 보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 때문에 경영에 지장을 받아본 적은 없는가.
“경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용이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원들의 가정환경과 정서가 안정된다면 회사에서도 마음 놓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고, 창의성도 더 발휘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직원 퇴근시간에 맞춰 밤늦게까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직원들의 애사심도 고양되고 업무효율도 높아졌다. 우리와 같은 업계에 근무하는 협력사원들도 광주신세계로 이직을 희망한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제도만 마련해놓고 실천하지 못하는 기업도 많다. 실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경영자들의 ‘의지’라는 씨앗과 직원들의 ‘인식변화’라는 자양분이 잘 녹아들 수 있는 ‘토양’이 중요하다. 토양은 바로 기업문화다. 어떤 제도를 막론하고 제도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과 배려다. 일·가정 양립 문화 역시 최고경영자부터 실무자까지 공통된 목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공감해야 한다. 이런 기업문화가 정착돼야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