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불황의 지상파 드라마<중>넘치는 간접광고
광고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리는 드라마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원작 설정을 무시해가며 참치 캔으로 요리를 하거나(KBS ‘내일도 칸타빌레’) 협찬사 제품 포장을 살짝 바꾸는 ‘꼼수’도 등장했다(MBC ‘모두 다 김치’).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조인성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켠다.(위쪽 사진부터) KBS·MBC·SBS TV 화면 촬영
KBS ‘내일도 칸타빌레’를 보고 원작 만화의 작가인 니노미야 도모코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원작에서 남녀 주인공은 학생답게 간소한 방에서 산다. 하지만 ‘내일도…’에서 주원과 심은경이 사는 방은 전문직 종사자의 널찍한 오피스텔 같다. 학생 혼자 사는 집에 대형 냉장고가 두 대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프랑스 요리를 즐겨 만들지만, 주원은 참치 캔으로 볶음밥을 해 먹는다. 심은경은 “(참치 캔을 내밀며) 오라방이 좋아하는 카레 참치!” 한다. 참치 광고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린다. 한국판 노다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에는 원작의 설정을 무시한 간접광고가 일정 몫을 했다.
프로그램에서 특정 상품을 보여주는 간접광고가 2010년 합법화된 후 지상파 간접광고 시장은 5년간 10배로 성장했다. 주문형비디오(VOD)와 인터넷TV(IPTV) 등을 통해 프로그램 광고를 건너뛰는 사람들이 늘면서 간접광고는 제작비 충당을 위한 필수 요소로 떠올랐다.
협찬사의 제품을 드라마에 교묘하게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 MBC ‘모두 다 김치’(2014년)는 ‘김치 따귀’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장모가 사위의 따귀를 김치로 때리는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우리뜰 김치’는 글씨체나 포장지의 디자인이 협찬사 제품과 비슷하다. 협찬은 본프로그램에서 특정 상표를 노출할 수 없기 때문에 비슷한 가짜 상표를 등장시키는 ‘꼼수’를 쓴 것이다.
최근에는 협찬과 간접광고를 묶어서 판매한다.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2014년)에서 미용제품 업체 사장인 주인공 장혁은 샴푸 광고를 찍기 싫어하는 여배우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며 “3대째 내려오는 장인의 손길을 상한 머릿결 모근 끝까지”라고 외쳤다. 협찬사 제품이 소품으로 등장한 이 장면은 5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KBS ‘빅’(2012년)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간접광고 7000만 원, 협찬 6000만 원, 간접광고로 상품 노출 5회, 협찬에 따른 노출 5회’라는 특정 업체의 계약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보고서 ‘간접광고 도입 등에 따른 협찬제도의 효과적 규제방안 연구’(2013년)에 따르면 방송 횟수가 많은 주말드라마는 7억∼8억 원, 미니시리즈는 5억 원까지 제작비를 지원받는다. 간접광고를 전제로 한 액수다. 보고서는 “협찬 단가를 높이려고 제작사가 지나친 경쟁을 유도하면서 간접광고 비용까지 이중으로 지불한 광고주가 더 강한 수위의 노출을 요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간접광고는 해외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2012년 전 세계 간접광고 비용은 전년 대비 11.7% 늘어난 82억5000만 달러(약 9조1000억 원)였고, 2016년에는 이 금액의 두 배 가까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간접광고를 잘 소화하는 연출자와 작가가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라며 “쪽대본으로 드라마를 찍고 시청률에 따라 광고 청약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제작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자연스러운 간접광고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