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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

입력 | 2014-11-27 03:00:00

[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악성 댓글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중고등학생들이 진행했던 형사모의재판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PC통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애용되던 시절, 대학생 A 씨는 언론 기사를 보고 PC통신 동호회 게시판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글은 채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삭제되었고, A 씨는 PC통신을 한 달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전기통신사업법은 공공의 안녕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소위 ‘불온통신’을 금지했었다. 정부는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게시 글을 삭제하고 게시자의 통신 이용을 금지할 권한이 있었다.

A 씨는 이처럼 개인의 통신 이용을 제한하는 근거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불온통신’이라는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한 규정으로 국민들의 통신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며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표현되는 사람들 제각각의 생각들이 모이면 ‘여론’이 형성된다. 여론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책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뜻은 선거가 없을 때에는 여론을 통해 대변되고 국가 정책에 반영된다. 정부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소통 분위기를 위축시키는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21조 제1항에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말이나 글, 출판 등의 형태로 스스로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를 가진다. 자유로운 의견의 형성은 다른 사람의 말과 글, 의견이나 정보 등을 접할 때 걸림돌이 없어야 가능하다. 국가는 국민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그에 적합한 소통의 구조와 환경을 마련할 헌법적인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국가는 국민들이 보다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신문, 방송, 통신 등의 매체를 이용한 소통공간을 마련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 이와 같은 소통공간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자유, 즉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일 국가가 정보를 모두 독점하고 국민에게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조용히 있어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의사 형성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언론·출판의 자유는 언론매체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식, 특히 국가의 공적 업무에 관하여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도 보호한다.

헌법 21조 2항에서는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하기 전에 미리 막는 국가의 ‘검열’도 금지하고 있다. 어떤 생각이나 의견의 옳고 그름은 사람들 속에서 논의되고 토론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이 옳지 않거나 위험한 생각이라는 선입견으로 국가가 사전에 개입하여 그 표현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한 사전 검열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검열로 볼 수 있다면 금지된다고 판단했다. 즉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민간 자율 단체의 방송 광고에 대한 사전심의도 검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언론·출판의 자유는 무한정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품을 치유 효능이 있는 의약품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부작용을 알리지 않고 광고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이런 표현들까지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음란한 표현은 어떨까? 그것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표현이 음란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헌법적으로 보호를 못 받는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하였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전파되는 음란물은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전한 성 관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법률로써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 댓글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표현들에 대해 피해자가 피해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표현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 즉 남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정신에 따른 것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