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서건창은 두 번이나 연습생 신분을 거쳤다. 고교를 졸업한 2008년 첫 번째 연습생으로 들어간 LG에서 1년 만에 방출된 서건창은 일반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야구와 멀어졌다. 그러나 그는 꿈을 접지 않고 2011년 다시 한번 연습생으로 넥센에 입단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서건창은 3년 만인 올해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가 됐다. 프로야구 취재 기자들의 투표로 뽑는 올해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데 이어 27일 프로야구 은퇴 선수들이 주는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72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한화에서 7번째 프로야구 감독을 맡은 김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신화 창조가다. 그는 하위권 팀을 맡아 단기간에 상위권에 올려놓는 ‘꼴찌의 기적’을 여러 차례 만들었다.
그럼에도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주인공들의 땀과 눈물 외에 또 다른 하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서건창과 장그래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들이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끌어주고 밀어주는 리더들의 도움이다. 장그래가 직장인들이 모시고 싶은 상사 1위로 꼽는 오상식 차장의 격려와 지원을 받으며 꿈을 향해 나가고 있다면 서건창은 그 스스로가 또 다른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염경엽 감독의 믿음을 통해 꿈을 이뤘다. 서건창에 앞서 연습생 신화를 만들었던 프로야구 두산의 김현수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김경문 감독의 두터운 믿음과 지원이 있었기에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리더의 중요성은 반대의 경우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홈런 타자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대호는 과거 롯데 시절 선수 생활을 중단할 뻔한 위기에 처했었다. 체중을 줄일 것을 강요한 당시 감독의 지시에 따라 무리한 달리기 훈련 등을 하다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부상에서 회복한 뒤 새로 부임한 감독은 이대호의 체중에 맞는 훈련을 시켰고 이대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뒤집어 보면 고졸 신화를 더 자주 보기 위해서는 미생의 오상식 차장 같은 리더가 많아져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오상식 차장 같은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장그래가 부럽다”고 말하는 이유다. 후배 기자에게 물어봤다. 오 차장 같은 선배가 어느 정도 되냐고.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다. 30%가 채 안 됐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만 그 정도라도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배들은 스스로를 오 차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