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나의 손
―최금진(1970∼)
과거는 토굴이었고, 손바닥엔 언제나 더러운 때가 끼어 있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친구들의 당돌한 악수가 무서웠다
학교에선 숙제를 안 해온 벌로 손바닥을 맞고
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웃는 나를 계집애라고 놀렸다
그 손이 늙은 것이다
쩌릿쩌릿 경련도 오고, 각질이 때처럼 일어난 손이
남에게 싹싹 빌던,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기 위해 입을 가리던
내 손이 곁에 누워 나를 쓰다듬는다
사랑 얘기, 때려치운 직장 얘기, 성경책을 찢어버린 얘기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나는 토닥토닥 내 손을 두드린다
이 손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밥이나 퍼먹다 갈 것이다
손 위에 바지랑대처럼 근심을 괴어놓고
바람좋은 날엔 어머니의 헐렁한 속옷이라도 널어야 한다
남은 게 고작 손 하나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손은 슬며시 반대편 손을 잡아 가슴팍 위에 얌전히 올려놓았다
처음부터 이런 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
심장이 뛰는 소리, 보일러 도는 소리, 창밖엔 눈이 내리고
눈을 감으면 어둠이 사분사분 속삭이는 소리, 나야, 나, 나야
적수단신(赤手單身)의 외로움과 자기 환멸에 사무치며 화자는 내뱉는다. 마주잡을 손도 없는 ‘이 손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밥이나 퍼먹다 갈 것이다’. 이제 와서 곡괭이를 잡을 것이냐, 칼을 잡을 것이냐. 펜을 못 잡아도 끝끝내 숟가락은 놓지 않겠지. 최금진 시를 읽을 때면 거기 시리게 배어 있는 자의식이 가슴에 흘러들어와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