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없이 미래 없다]<7>보육서비스, 이젠 量보다 質로
임 씨는 “대기자가 100명이 넘는데 그마저도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어서 우리 같은 전업주부는 그저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민간 어린이집은 아이를 일찍 데려가라고 눈치를 자주 주고 식단도 부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보육예산을 대폭 늘리면서 보육서비스의 ‘양’은 과거보다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민간 보육을 꺼리고 국공립에 몰리는 현상은 여전하다. 보육서비스의 양이 충분히 공급되는 상황에서도 정작 수요자들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보육 미스매치’가 심해지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이 같은 보육서비스 미스매치 현상을 꼽는다. 이제는 정부가 ‘양’보다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 보육서비스를 균질하게 끌어올려야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개월 된 딸을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워킹맘’ 최민정(가명·31) 씨는 둘째를 낳을 생각이 없다. 민간 어린이집의 보조금 횡령, 아동 학대 등의 뉴스가 잇달아 보도된 후 딸을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솔직히 (민간 어린이집에서) 교육은 제대로 하는지, 사건은 안 생기는지 늘 불안하다”며 “국공립이 많이 늘어난다면 둘째도 낳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무상보육 바람을 타고 정부의 보육예산(10조4000억 원)이 급증하면서 보육서비스의 ‘양’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2000년 국공립과 민간, 법인 등을 모두 합쳐 1만9276개에 불과했던 어린이집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4만3770개까지 늘어났다. 같은 기간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동 수도 69만 명에서 149만 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부모들이 체감하는 보육서비스의 ‘질’은 어린이집 유형에 따라 균질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2012년 육아정책연구소가 2528가구를 조사한 결과 어린이집 만족도(5점 만점)는 직장(4.13점)과 국공립(3.85점)이 민간(3.65점)보다 높았다. 경영난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보육교사 처우가 좋은 국공립, 직장 어린이집 보육서비스의 질이 높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서비스가 좋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체 어린이집에서 직장 어린이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1.4%, 국공립은 5.3%에 불과한 반면 민간(52.6%)은 절반 이상이다. 결국 서비스의 질이 좋아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과 직장 어린이집은 수가 적어 들어가기가 어렵고, 들어가기가 쉬운 민간 어린이집의 서비스는 질이 떨어지는 ‘미스매치 현상’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밑에서부터의 ‘육아 공동체’ 확립도 중요
보육서비스의 질을 어린이집 유형에 상관없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미스매치를 해소하려면 정부가 직접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거나, 직장 어린이집 설치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민간 어린이집의 서비스를 국공립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보육의 최전선에 있는 베이비시터나 보육교사의 처우를 높이는 것 역시 필수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민간 어린이집은 노동 강도가 강하고,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보육교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전체 보육예산에서 보육교사 인건비 지원액의 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예산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적으로는 붕괴된 ‘육아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재미’와 ‘감동’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다. 자아실현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커지면서 행복해야 할 육아가 ‘어려운 과제’로 전락했지만 육아 공동체를 통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재미를 복원시키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