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혹은 강원도 오크밸리의 ‘뮤지엄 산’이나 일본의 나오시마 아니면 미국 관광길에서 당신은 우연히 캄캄한 방의 벽면을 손으로 더듬어 들어가 본 적이 있을 수 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의 사각 프레임이 나타나면서 방 전체가 투명하고 얇은 막으로 덮여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느꼈을 것이다. 빛의 사각 프레임은 역시 빛으로 된 삼각형 쐐기 모양의 장막과 선(線)들로 분할돼 마치 빛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방이, 또는 무한대의 공간이 저 너머에 펼쳐지는 듯한 환영(幻影)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다. 빛의 조각가로 일컬어지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이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 디지털 세상에서 한없이 느린 속도로 삶과 죽음, 시간과 초월성을 고통스럽게 형상화하고, 존재와 비존재, 또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있는 빛을 이용해 우리 눈의 착시를 끌어내는 이 작품들은 분명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미학적 체험이다. 은총, 계시, 황홀, 원시성, 숭고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러나 거기 어디에도 미(美)는 없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느끼는 즐거움(快)을 우리는 이 작품들 앞에서 느낄 수 없다. 즐거움은커녕 오히려 처음에는 불쾌감을 느낀다. 예술작품이란 미의 추구이며 미의 표현이라고 배웠는데, 그렇다면 이것들은 예술작품이 아니란 말인가.
영화 인터스텔라의 인기가 높다. 오늘날 공상과학(SF)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유례없는 인기도 숭고 미학에서 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SF 영화들은 거대한 우주와 고도의 테크놀로지 앞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뭔가 알 수 없는 미지의 불안감,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디스토피아적 예감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숭고 미학과 부합하는 것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