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 대한민국 치킨전쟁 [특집 | ‘치킨공화국’의 사회경제학]
● 250여 브랜드…AI도 손든 한국인 치킨 사랑
● 프라이드, 양념, 간장, 불닭, 오븐…끝없는 진화 경쟁
● 염지, 밑간, 배터믹스, 파우더, 소스…1급 영업비밀
● 한국형 치킨 핵심은 양념소스…13억 중국 시장 노린다
● 대구에서 인정받아야 ‘전국구’ 진출 넘봐
우리 집은 치킨을 시켜야 하는 이유가 열 가지가 넘는다.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서, 한국 선수가 출전하는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면서, 주말 점심이나 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기념일이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입이 심심해서…. 어쩌다 한 주만 건너뛰어도 누군가의 입에서 “치킨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치느님, 치덕후, 치믈리에
기자가 사는 성북구 정릉동만 해도 반경 1.2km 안에 40개가 넘는 치킨점이 경쟁을 벌인다. 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간장치킨, 오븐구이치킨, 마늘치킨, 고추치킨, 화덕구이치킨, 파닭, 두마리치킨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같은 프라이드치킨, 양념치킨도 업소마다 모양과 맛이 다르다.
그저 술안주나 아이들 간식거리 수준이 아니다. 이색적이고 서구적인 음식점들로 가득한 홍익대 일대를 걷다보면 두세 집 건너 치킨점이다. 홍대입구역-상수역을 오가며 대충 세어보니 100개쯤 됐다.
이소미(20) 씨는 “맥주 마실 때 안주로 치킨을 많이 찾지만 평소 간식으로도 즐긴다. 다른 고기에 비해 부담이 덜하고, 가격 대비 영양가와 만족도도 최고다. 뭐 먹을까 할 때는 치킨이 정답”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이곳 치킨점 중에는 손으로 들고 뜯기보다는 양식처럼 나이프와 포크가 딸려 나오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업소가 여럿 눈에 띈다. 이런 곳엔 예외 없이 젊은 여성들끼리 온 손님이 많았다.
“다른 육류는 솔직히 부위별 맛 차이를 크게 못 느낀다. 생선회도 종류별 맛 차이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치킨은 브랜드마다 맛이 확연히 달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저마다 스타일이 달라 자주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명동영양센터, 켄터키치킨센터
영화 ‘집으로’에서 치킨이 먹고 싶다는 손자를 위해 할머니가 백숙을 해주자 어린 유승호가 이건 치킨이 아니라며 엉엉 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닭’과 ‘치킨’은 같은 단어이지만, 우리는 굽거나 튀긴 닭을 치킨이라 하지 삼계탕, 백숙, 찜닭을 치킨이라 하지 않는다. ‘치킨’은 ‘닭’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닭은 으레 물에 삶거나 조려서 먹던 우리나라에 ‘치킨’이 처음 나타난 건 1961년 ‘명동영양센터’가 생기면서부터다. 지금도 아파트 단지나 시장 어귀 1t 트럭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전기구이 통닭의 시조가 명동영양센터다.
치킨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어울릴 때 최고의 메뉴로 손꼽힌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닭을 튀겨 먹게 되었을까. 정설은 없다. 주한미군이 추수감사절 때 칠면조 대신 닭을 튀겨 먹었는데 그게 퍼져나갔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일부에선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이던 닭강정에서 기원을 찾기도 한다.
기원이야 어떻든 통닭이 보편화한 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추진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의 덕이 컸다. 닭 생산량이 이전보다 13배나 증가했다. 그러다 1971년에 해표식용유가 출시됐다. 닭과 기름이 풍성해지면서 닭튀김이 가능해졌다.
50대 이상 중엔 지금도 튀긴 통닭(프라이드치킨)을 ‘켄터키치킨’으로 부르는 이가 많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을 지칭하는 것인데, KFC가 공식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84년이지만 그 이전부터 프라이드치킨을 켄터키치킨으로 불렀다. 그 시절 동네마다 켄터키치킨센터라는 이름의 프라이드치킨 가게들이 있었다. KFC 치킨은 튀김옷이 두툼하고 튀김가루의 컬(curl·튀길 때 생기는 물결 모양)이 살아 있는 크리스피치킨이지만, 당시 켄터키치킨센터에서 파는 프라이드치킨은 시장 통닭 수준이었다.
한국 프라이드치킨 체인점의 원조는 1977년 명동 신세계백화점 지하에 입점한 림스치킨이다. KFC 치킨과 달리 튀김옷이 얇은 엠보치킨이었는데 마늘, 생강, 인삼을 넣은 독특한 파우더 맛으로 인기를 끌었다. 뒤에 생겨난 보드람치킨, 치킨뱅이, 둘둘치킨도 엠보치킨 스타일이다.
1984년 한국에 진출한 KFC는 치킨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대학로 KFC매장은 대학생은 물론 고교생들의 미팅 장소로 유명했다. 치킨을 먹으며 미팅을 하곤 했는데, 여학생들의 고운 입술에 튀김 기름이 묻어 더욱 반짝였으니 어느 남학생이 마른침을 삼키지 않았겠는가.
매운맛으로 달랜 고통
치킨의 시작은 술안주였다. 소주와 삼겹살, 막걸리와 파전처럼 맥주와 최고의 파트너였다. 왜 치킨에 맥주였을까. 치킨의 느끼함을 보완하는 데는 맥주, 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최고였다는 설과, 1960년대 고급 음식이던 전기구이 통닭과 비싼 술이던 맥주를 함께 먹는 게 당시 샐러리맨들의 소박한 사치로 유행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치킨의 진화가 거기서 멈췄다면 오늘날의 치킨공화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념치킨의 등장과 배달 서비스는 치킨계의 혁명이었다. 대구 지역에서 시작한 맥시칸치킨, 페리카나양념치킨, 처갓집양념통닭이 양념치킨이라는 새로운 메뉴를 내놓으면서 배달 서비스 개념을 도입했다. 양념치킨은 어린이들에게 최고 간식으로 각광받으며 전국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다. 스모프양념치킨, 바니양념치킨 등 수많은 양념치킨 브랜드가 잇따라 생겨났다.
1980년대 중반 페리카나양념치킨이 CF로 대박을 터뜨리며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30~40대라면 지금도 개그맨 최양락이 부르던 CM송을 기억할 것이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양념치킨은 단기간에 치킨 시장을 양분했다.
1995년 론칭한 BBQ는 처음부터 배달 전문을 콘셉트로 삼았다. 또한 일반 프라이드치킨이 아니라 KFC에서 파는 것과 같은 고급스러운 크리스피치킨을 집에서 싸고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국가와 국민에게 큰 고통이었지만 치킨업계에는 오히려 큰 기회가 됐다. 직장에서 밀려난 40~50대 가장들이 비교적 적은 밑천으로 창업할 수 있는 게 치킨점이었다. 특히 8평 남짓한 작은 매장으로 창업이 가능했던 BBQ는 론칭 4년 만에 1000호점을 돌파하며 1등 브랜드로 올라섰다. 동네마다 우후죽순 들어선 치킨점은 치킨 소비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 BBQ는 치킨 광고모델로는 처음으로 아이돌 가수 핑클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치킨 모델의 주력이 개그맨에서 아이돌그룹으로 바뀐 계기였다.
치킨교육을 받는 예비 창업자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외환위기의 압박에 신음하던 국민은 음식으로라도 그 고통을 잊고 싶었던 걸까.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유행했다. 치킨 시장에서도 불닭 바람이 불었다. 불닭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튀긴 후 핫소스를 발라 구워낸, 변형된 양념치킨이라 할 수 있는 홍초불닭 스타일과, 오븐에 구운 후 핫소스를 바르고 다시 숯불에 구워낸 변형된 바비큐 스타일이 그것. 1998년 론칭한 코리안숯불닭바비큐가 바비큐 스타일의 효시라 할 수 있고, 훌랄라치킨이 그 뒤를 이어 론칭해 인기를 끌었다.
불닭 열풍이 가라앉자 교촌치킨의 간장치킨이 색다른 맛으로 치킨 시장을 평정했다. 짭쪼름하면서 달콤한 맛을 선보이고 가수 비를 모델로 앞세우며 젊은 여성층까지 치킨 시장의 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AI 넘고, 트랜스지방 찍고
2002년 한일월드컵은 치킨 시장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 거리 응원이 펼쳐지는 현장에도 치킨이 배달됐고, 집에서 TV로 경기를 보면서 먹기에 딱 좋은 메뉴도 치킨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엔 워낙 주문이 몰려 치킨을 주문하면 2, 3시간은 기다려야 배달될 정도였다.
폭발적으로 확대되던 치킨 시장은 2003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며 타격을 받았다. 2004년 AI 확산 때는 별하나치킨(뒤에 BHC치킨으로 바뀜)이 부도 나고, 전체 치킨점의 10%가 문을 닫았을 만큼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AI가 연례화하다시피 하자 소비자에겐 ‘면역’이 생겼다. 치킨을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2005년엔 대두유의 트랜스지방 문제가 제기되면서 치킨 시장이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치킨은 대두유로 튀겼다. 이때 굽네치킨이 오븐치킨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전기구이 통닭에 가까운 오븐치킨은 프라이드치킨의 느끼함과 양념치킨의 들쩍지근한 맛에 질린 이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다. 특히 최고 아이돌 소녀시대를 모델로 내세운 게 적중했다. 튀기지 않고 구웠기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소녀시대처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각인시킨 것.
기존 프랜차이즈들도 트랜스지방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BBQ가 발 빠르게 몸에 좋은 올리브유로 바꾸며 웰빙 치킨 이미지를 심었다. 다른 업체들도 옥수수기름, 해바라기유, 카놀라유 등 채종유로 기름을 교체했다.
2000년대 후반엔 네네치킨이 파를 곁들인 파닭으로 새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뼈를 발라낸 순살치킨, 양으로 승부를 거는 호식이두마리치킨도 등장했다. 2010년경에는 가마로강정 등 강정치킨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변신을 거듭해온 치킨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바로화덕치킨의 문어치킨(문어+치킨)과 랍치킨(로브스터+치킨) 등 치킨과 해산물을 결합한 메뉴가 새롭게 뜨고 있다. 이 밖에 누룽지통닭, 퐁듀치킨, 고추튀김과 크림소스를 가미한 할라피뇨 치즈 치킨 등이 젊은 여성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개그맨들의 ‘치킨전쟁’이 눈길을 끈다. 강호동(강호동치킨678), 이경규(돈치킨), 컬투(컬투치킨), 허경환(포차인허닭)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치킨프랜차이즈를 열었고, 김병만도 투마리치킨 광고모델을 하다 아예 대표이사로 나섰다.
특기할 점은 한국인은 여전히 치킨을 대개 통째로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부위별로 파는 메뉴도 있지만 대부분 마리 단위로 먹는다. 여럿이 먹을 때도, 혼자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치킨 맛은 기름 맛
그런데 우리는 치킨을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데 열중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 치킨전(展)’을 펴낸 정은정 씨는 이 책에서 “대체 치킨은 무슨 맛으로 먹는지를 오래 관찰한 결과 (…) 각자 갖고 있는 치킨의 취향은 프라이드냐 양념이냐로 갈리지만 그건 튀김옷이나 소스에 대한 취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치킨 맛을 이야기할 때 닭 자체의 맛은 아예 배제된다는 얘기다.
물론 국산 닭인지는 중요하다. 과거 교촌치킨이 수입 닭을 쓴다는 소문으로 큰 타격을 입은 후 국산을 쓴다는 것을 적극 홍보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순살치킨, 닭강정의 인기가 급격히 사라진 것도 원산지 의혹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치킨 프랜차이즈는 자체적으로 닭을 사육하지 않고 하림, 마니커 등 양계 전문업체로부터 공급받는다. 양계업계와 치킨프랜차이즈 업계는 상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치킨용 닭은 생후 35일 전후, 내장 등을 제거한 상태에서 1kg 남짓한 것을 사용한다. 두마리치킨은 더 작은 닭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은정 씨는 “우리가 치킨맛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고소한) 기름맛”이라고 했다. ‘어느 집에서 치킨을 시켰군’ 하고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진동하는 치킨 냄새는 닭 냄새가 아니라 닭을 튀긴 식용유 냄새다. 2000년대 중반 오븐 등에 구운 닭이 유행하다 다시 프라이드치킨으로 돌아온 것도 우리 입맛이 기름 맛에 ‘인이 박였기’ 때문이다. 튀긴 기름 맛에 길들어 정작 닭 본연의 맛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생닭을 사와 집에서 기름에 튀기면 치킨점에서 배달시켜 먹는 맛이 나오지 않는다. 일반 가정에서 닭 조각이 푹 잠길 정도의 많은 식용유로 164℃의 고온에서 튀기는 것도 힘들지만, 설사 그렇게 해도 그 맛이 나지는 않는다. 그 비밀을 알기 위해 한 프랜차이즈 치킨점에서 프라이드치킨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봤다.
주인은 먼저 본사로부터 공급받은 닭의 포장을 뜯었다. 냉장 상태로 들어온 닭은 1차 세척이 된 상태였고 4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주인은 “이미 염지(curing)가 된 상태”라고 했다. 염지는 고기 잡내를 제거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근육이 많은 닭다리가 질기지 않고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내리는 게 바로 염지 효과 때문이다. 주인은 닭을 다시 한 번 씻으면서 기름과 쓸개 등 식감이 안 좋은 부위를 제거하는 채반 작업을 했다. 그는 “일부 업소에선 귀찮아서 채반 작업을 건너뛰는데, 그러면 치킨 맛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초특급 영업비밀
채반 작업을 마친 닭은 2시간 이상 물빼기를 한 후, 본사에서 공급받은 밑간(marinade)에 재워졌다. 그저 소금, 후추를 뿌리거나 식초, 레몬주스 등에 담그는 수준이 아니다. 업체마다 다양한 식품첨가물을 비율대로 섞어 자신들만의 밑간을 만든다. 밑간은 닭살을 부드럽게 하고 향미를 풍부하게 한다. 밑간에 재운 후 일정 시간 숙성하면 준비 끝.
프라이드치킨 주문이 들어오면 배터믹스와 물을 섞어 닭 조각에 골고루 코팅을 해준다. 이 배터링(battering)을 하지 않으면 육즙이 빠져나와 고기가 퍽퍽해지고, 바삭한 튀김을 만들 수 없다. 치킨 맛의 미묘한 차이는 배터믹스가 결정한다고 한다. 배터믹스와 물의 배합 비율도 중요하다. 배터링을 한 후 튀김가루 같은 파우더를 입힌다. 브레딩(breading)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파우더 역시 단순한 튀김가루가 아니다. 치킨은 그다음에야 비로소 기름 속으로 들어간다.
양념치킨은 제조법이 조금 다르다. 배터믹스도 다르고, 브레딩 대신 양념소스를 묻힌다. 또한 간장을 섞으면 간장치킨, 마늘을 넣으면 마늘치킨, 양파를 곁들이면 양파치킨이 된다. 엠보치킨은 물반죽이나 배터링 과정 없이 파우더를 얇게 입혀 튀긴다. 파리치킨 유의 경우 프라이드치킨처럼 기름에 튀긴 뒤 고추, 마늘 같은 재료를 섞어 다시 한번 불에 볶아준다.
염지 방법과 밑간, 배터믹스, 파우더, 소스 제조기술 등은 모두 각 프랜차이즈의 1급 영업비밀이다. 프랜차이즈 회사들의 신규 가맹점주 교육은 물론, 사설 치킨학원에서도 오로지 기름에 튀기고, 소스를 바르고, 접시에 예쁘게 담는 법만 가르칠 뿐이다. 결국 자기네가 만든 것을 사서 쓰라는 것이다. 어느 유명 치킨점에서 기술전수비로 몇 천만 원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웬만한 프랜차이즈 가맹비만 1000만 원이나 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
프라이드치킨의 맛은 튀김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튀김기는 크게 2가지. 뚜껑이 없는 튀김기는 파우더의 컬이 풍부하게 튀겨진다. 대부분의 프라이드치킨은 뚜껑이 없는 튀김기를 쓴다. 뚜껑이 있는 튀김기를 압력식 튀김기라고 하는데 뚜껑이 유증기를 잡아주는 기능을 한다. 파우더의 컬이 덜 생기는 대신 좀 더 바삭하게 구워지는 효과가 있다. 엠보치킨이 압력식 튀김기를 사용한다.
양념소스도 치킨의 맛을 규정한다. 프라이드치킨을 시켜도 간장종지에 양념을 담아 가져온다. 양념소스야말로 치킨을 한국 치킨답게 만드는 핵심의 맛이 아닐까.
“레드오션 시장 아니다”
치킨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소액 창업으로 치킨점만한 게 없어서인지 새로 문 여는 치킨점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 치킨점의 시장 전망은 어둡기만 할까.
프랜차이즈 업체는 치킨을 한 마리 팔면 보통 4000원 정도 남는다고 한다. 반면 업주들은 1000~2000원 남는다고 하소연한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15년째 BBQ 매장을 운영하는 정철순 씨는 “계산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만6000원짜리 치킨 한 마리를 팔면 40% 정도 마진이 남는다. 그런데 닭값의 10%(1600원)는 쿠폰 적립금으로 떼어놓아야 한다. 여기에서 가게 임차료, 배달 아르바이트와 주방보조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뺀 게 순이익인데, 비용은 점포마다 다르다. 배달 직원을 쓰면 월 200만 원쯤 나간다. 그 돈 주고도 꼭 붙어 있는 배달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 배달대행업체를 이용하면 한 달에 20만~30만 원을 보증금으로 내고, 건마다 3000원씩 내야 한다. 그러면 정말 남는 게 없다. 아내가 주방을, 남편이 배달을 전담하면서 피크타임에만 주방보조와 배달 아르바이트를 써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씨는 “치킨 시장이 레드오션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1인당 닭 소비량은 아직 일본이나 미국보다 적다.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함께 열심히 하면 먹고살 만한 업종”이라고 했다. 정씨의 가게는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일반주택가라 입지가 좋은 편이 아닌데도 하루 평균 매출이 150만 원쯤 된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다 몇 년 전부터 홀을 넓혀 술손님을 받고 있는데, 동네 주민들은 물론 요즘 효자동이 관광지로 뜨면서 구경 왔다 들르는 손님도 꽤 많다. 기자가 찾아간 낮 3시에도 한두 테이블씩 손님이 이어졌고, 배달 주문도 계속됐다. 배달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고 했다. 정씨의 조언을 들어보자.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한 마리라도 더 팔 기회가 생긴다. 나도 동네 반장도 하고, 이런저런 모임에 적극 참여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영업해야 한다. 가령 겨울엔 닭이 덜 자라 보통 때보다 작은 것이 들어온다. 고객들에겐 닭 한 마리의 양이 어느 정도라는 기준이 있다. 그러니 작은 것을 그대로 쓰면 고객의 불만이 커진다. 그래서 조금씩 더 넣는다. 20마리 분량으로 18마리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손해 같지만, 그런 눈에 안 보이는 서비스가 경쟁력을 높여준다. 비용을 아낀다고 속포장지를 안 쓰는 업소도 있는데, 박스에 기름이 번져 고객이 박스를 열 때 지저분해 보인다. 눈앞의 이익보다 고객 만족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맛있는 메뉴를 끊임없이 개발하는 좋은 프랜차이즈 업체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업주 스스로 매장에서 얼마나 진실하고 성의껏 장사하느냐가 성공의 열쇠라는 얘기다.
중국 수출된 ‘치맥축제’
할인판매 강요, 물량 밀어내기, 과도한 판촉 강요. 닭이나 포장재 같은 물품의 질 저하 등으로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들이 한 번씩은 가맹점들과 갈등을 겪었다. 지금은 이런 횡포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오히려 10년 이상 된 점주에게 자녀의 고등학교 대학교 학자금을 지원하는 등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프랜차이즈도 있다.
치킨의 인기는 이제 국내를 넘어서 13억 중국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만든 ‘치맥’(치킨+맥주) 인기 덕분이다. 지난 8월 중국 닝보시에서 대규모 치맥축제가 열렸는데 사흘간 50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과연 ‘K-치킨’이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중독시킬 수 있을까.
▼‘치킨의 고향’ 대구▼
대구는 안동찜닭 등 전통적으로 닭요리가 발달하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전국 물량의 80%가 이곳에서 움직였을 정도여서 닭 산업이 번성했다. 6ㆍ25전쟁 이후 대구 황금동 일대를 중심으로 산란계 사육농장과 부화장, 도계장 등 축산산업시설이 들어섰다. 1961년에는 미국에서 닭이 수입돼 육계사육 시대의 기반이 조성됐다. 대구가 대도시화한 이후 사육농장은 전북 지역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도계시설 등은 그대로 남아 있어 닭이 넘쳐났다. 이를 활용한 음식점이 늘어날 여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엔 ‘전기통닭구이’라는 서구형 바비큐도 대구에서 일찍부터 판매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칠성시장과 번개시장, 평화시장, 서문시장 등에서 닭을 기름에 튀겨 조각낸 후 소금에 찍어 먹는 프라이드치킨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대구·경북 지역에는 80여 개 치킨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에만 1900여 곳의 치킨가게가 성업 중이다. 이렇다보니 업체들은 사업성이 있는 신메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고, 그 결과 지역 소비자는 물론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4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