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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 좋아하다 세금폭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입력 | 2014-12-01 03:00:00

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29>




지난달 29일은 별 연관 없어 보이는 2가지 이슈가 세금으로 연결된 날이었다. 첫 이슈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계기로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직접구매) 방식으로 국제쇼핑 대열에 참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명계좌 보유를 전면 금지하는 금융실명제가 국내에서 전면 시행된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그렇다 치고 직구가 왜 세금으로 연결된 날일까.

우선 해외 직구족들에게 한 가지 팁을 전하자면 ‘원화 대신 달러화로 결제하라’이다. 원화로 결제하면 원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 단계가 추가돼 수수료 명목으로 결제대금의 3∼8%를 더 내야 한다. 소비자원이 조사해 보니 2013년에 원화로 결제한 사람 중 70% 이상이 ‘결제통화를 선택하라’는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자동으로 원화로 결제했다. 사이트 상단의 결제통화 지정 항목에서 통화 종류를 원화(KRW)에서 달러화(USD)로 바꾸는 걸 잊지 마시라. 또 해외여행 시 숙박시설을 예약할 수 있는 유명 사이트인 익스피디아를 이용할 경우 달러화로 결제를 하려면 한국인을 위한 사이트(www.expedia.co.kr) 대신 미국 사이트(www.expedia.com)를 이용해야 한다.

직구 열풍이 불고 금융실명제가 강화된 11월 29일 소비자들이 새삼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야 할 교훈은 ‘세금을 설렁설렁 계산하면 세금 폭탄을 맞는 데 그치지 않고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지난주 만난 김낙회 관세청장 말에서 바로 이런 메시지가 읽혔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직후 관세청장으로 옮긴 5인방(허용석 윤영선 주영섭 백운찬 김낙회) 중 한 명이다. 김 청장은 이들 중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자신이 한 말을 꼭 지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과정에서 감정적인 변화를 읽을 수 없다. ‘탈세하면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기준을 정하고 단속하고 그걸로 끝이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통관 절차에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원칙(현지 직접구입 시 면세한도 600달러, 해외직구 시 면세한도 200달러)을 정해뒀으니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200달러 넘게 직구하고, 600달러 이상 물건을 외국 현지에서 구매해 국내로 반입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운 좋게 넘어갔던 소비자들 가운데 앞으로 세관의 전화를 받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직구 한도인 200달러는 배송료까지 포함된 가격이니 실제 물품 구입가격은 190달러를 넘지 않는 게 좋다.

금융실명제는 더 중요한 세금 문제를 담고 있다. 이 제도는 1993년 8월부터 이미 시행 중이었지만 계좌 실소유자와 명의자가 합의하면 차명거래도 허용한다는 점에서 반쪽짜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계좌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소비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법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동요하자 금융당국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달래고 있다. ‘가족 명의의 차명 예금의 경우 배우자는 6억 원까지, 성년인 자녀는 5000만 원까지는 염려할 것 없다, 동창회나 부녀회 같은 친목모임 회비를 회장이나 총무 명의 계좌에 넣어두는 건 괜찮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예컨대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자녀 명의의 통장을 만든 뒤 성년이 되기 전까지인 18년 동안 연 3% 이자를 주는 적금에 매달 10만 원씩 넣는다면 2760만 원(복리 기준)의 목돈이 된다. 이는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세를 내지 않고 줄 수 있는 돈의 한도가 2000만 원이므로 금융실명법 위반이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잠재적 조세포탈범이 있는 셈이다.

이들이 괜찮을지 금융위원회 이윤수 은행과장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증여세 한도를 초과한 차명계좌는 실명법 위반입니다. 하지만 국세청이 이 정도 법 위반에 대해 개인을 일일이 고발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2000만 원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내면 될 일입니다.”

금융당국과 국세청이 이 점에 합의했을까. 확인해보니 그런 합의는 없었다. 국세청이 그런 묵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도 없지만 상황에 따라 시장에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경고성 처벌에 나설 수도 있다.

세금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위기의식을 조금 발전시키면 세(稅)테크가 된다. 예를 들어 자녀가 10세가 되기 전에 2000만 원 이하를 증여하고 그로부터 10년 뒤 추가로 2000만 원을 증여하는 등 10년 단위로 쪼개 증여하면 세금도 내지 않고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걸릴 일도 없다. 해외직구 시대와 금융실명의 시대에선 현명한 소비자가 재태커로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