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 2심 충실화 방안’… 2018년부터 경력 15년 이상 배치 소송 전 증거조사제 도입… 판사가 직접 증거제출 명령할수도 의료소송 등 피해자에 큰 도움… 들쭉날쭉 위자료 기준도 구체화
대법원이 공개한 사실심 충실화 방안 중 가장 눈에 띄는 제도는 영미식 디스커버리 제도와 독일식 증거조사 절차를 참조해 만든 ‘한국형 디스커버리’다.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상대방 측에 증거가 있다’는 취지의 증거 조사 신청을 하고 법원이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면 원고의 본안 소송 제기 전에도 판사가 증거 조사에 나설 수 있다. 국내에는 기존에 없던 제도로 법관이 상대방에게 문서제출 명령을 내리거나 직접 현장을 방문해 증거를 채집할 수도 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자료를 위·변조, 누락한다면 향후 본안 소송에서 피해자 측 주장이 그대로 인정될 수 있다. 이는 일반 시민이 기업, 의료기관, 국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내려 해도 증거 수집 및 확보 수단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수사기관을 이용해 증거 수집에 나서야 했던 현실이 결국 재판 만족도와 공정성을 저해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향후 의료 소송이나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민사 손해배상 소송 등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개선안은 1심 재판 역량 강화 차원에서 2018년부터 전체 단독재판장의 50% 이상을 경력 15년 이상의 부장판사로 채우기로 했다. 현행 단독재판은 상대적으로 경륜이 낮은 5∼9년 차 법관이 대부분 맡아왔는데 경륜이 부족해 충실한 재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법원은 “경륜 있는 부장판사가 단독재판을 담당하면 재판의 신뢰도가 향상돼 재판 결과에 승복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사건이 중요하고 복잡한 고등법원은 전원을 경력 15년 이상의 법관으로 구성하고 법원 정원을 370명 늘려 사건 심리를 충실화하는 토대도 마련한다.
법관마다 기준이 모호해 액수가 들쭉날쭉하다는 지적이 잇따른 위자료 산정 기준도 손질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인신사고 위자료 기준을 재점검하고 새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명예훼손 등 인격권 침해 사건도 최근 10년간 선고 위자료 액수 등을 분석해 공개한다.
재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거래(서울중앙지법), 증권·금융(서울남부지법), 언론·개인정보침해(서울서부지법), 해사(부산지법) 등 특정 분야 사건을 집중 처리하는 특성화 법원 제도도 도입된다. 전국 지법에서 각각 처리하는 특허침해 소송의 경우 고법 소재지 5개 지법이 전속 관할한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재판에는 법관뿐만 아니라 의사나 건축사 등 관련 지식 전문가를 심리에 참여시켜 재판의 신뢰도를 높이기로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