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차장
그럼에도 이 문건 작성 이후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교체설이 시도 때도 없이 찌라시와 언론에 등장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남는다(이 문건에는 정 씨가 십상시에게 김 실장 교체설을 퍼뜨리라고 지시했다는 대목이 있다).
졸지에 환관이 돼버린 청와대 인사들은 이를 보도한 세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정 씨와 십상시의 회동 여부는 조만간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선 논란이 잦아들 것 같진 않다. 정 씨를 둘러싼 소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유출 문건 내용에 얽매이지 말고 정 씨와 관련한 의혹들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정 씨 관련 의혹을 규명하는 것, 청와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이번 문건 유출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와 정 씨 사이의 알력 다툼은 기정사실화됐다. 정 씨 측이 박 씨를 미행했고, 박 씨가 이를 내사한 보고서를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의 실체는 무엇인가. 박 씨 부부가 올해 여행을 다녀오다가 공항에서 가방 수색을 당했다고 한다. 누군가 일부러 망신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비선 라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권에 부담이다. 그런데 그 라인끼리 다투다니 말세다. 두 사람 사이의 알력 다툼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청와대가 해야 할 두 번째 일이다.
문제는 결국 인사다. 특정인을 왜 발탁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선 논란을 잠재울 순 없다. 당장 반미주의적 시각이 뚜렷한 김상률 대통령교육문화수석은 왜 기용했는가.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탕평인사였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 청와대가 해야 할 세 번째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1년 차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발목이 잡혀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집권 2년 차 뭔가 되나 싶더니 세월호 참사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제 다시 ‘정윤회의 늪’에 빠진다면 이 정권의 골든타임은 영영 날아갈 것이다.